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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걷는길 (14) 부르고스에서 타다호스까지

다 걸으려면 결국 꾸준히 걸어야 한다.

by 신아영

부르고스 Burgos - 타다호스 Tadajos 13km



부르고스 대성당 뒤편

부르고스는 여지껏 만나본 스페인의 많은 도시 중 가장 매력적인 도시였다. 대도시였지만 팜플로냐처럼 번잡하지 않았고, 거리는 여유로웠으며 도심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조그만 하천도 마음에 들었다.

진지하게 하루를 더 묵을까 고민했다. 전날 만났던 사람들이 부르고스 대학교를 구경해볼 것을 추천했었고 아침에 대학교 쪽으로 걸어가면서 하루 일정을 짜보기로 마음먹었다.

흐린날 아침 부르고스의 풍경

아침 일찍 길을 나서니 날이 흐렸다. 부르고스를 빠져나가는 길은 도심 한가운데 차려놓은 멋진 정원같은 공원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스페인의 하천과 도심조경을 구경하며 걷다보니 부르고스 대학교까지 다다랐다.

아침 일찍 가서 그런지 문은 닫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외부에서 살짝 맛보기로 건물을 구경하는데 역시나 건물 자체는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파리에서도 느꼈지만 이토록 오래된 건물들이 도심 한 가운데에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것 자체가 굉장한 매력이다.

부르고스 대학교

부르고스에 더 머물지, 걸을지 고민하다가 그냥 발길 닿는대로 다음 마을로 향했다. 크게 맘먹지 않는 이상, 아침 시간대엔 걷게된다. 해가 중천에 뜨기 직전까지 약간은 쌀쌀한 공기를 가르며 조금 빠른 속도로 걸을때의 기분이 가장 좋다. 물론 얼마 못가 다리의 통증과 햇살의 뜨거움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부르고스를 지나면서 말도 안되는 평지들이 계속 눈 앞에 펼쳐졌다. 땅과 하늘이 맞닿으며 만들어내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현실 감각마저 없어질 정도였다.

눈이 즐거웠던 순간도 잠시,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바라보고 있자니 질려버렸다. 평지에서는 눈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없어서 내 앞을 스쳐지나간 순례자들이 어디쯤 걷고있는지 눈에 다 들어온다. 그런데 한참 전 나를 지나간 순례자가 여전히 내 시야의 끝쪽에서 열심히 걷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중압감이 나를 감쌌다.

가도가도 끝이없는 길.

평지를 걷는 것은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걸음이다. 산길은 다이나믹하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 시원한 내리막을 만나기도 하고, 진흙밭이었다 자갈을 만났다가 뽀얀 모래길을 걷기도 한다. 그런데 평지는 순탄하다. 별다른 장애물도 없을 뿐더러 모든 길이 눈 안에 들어와 어느정도 예측도 가능하다. 그래서 때로는 평지를 걷는 일이 더 힘들다.

끝이 없어보이는 길의 끝이 어딘지 알기위해선 끊임없이 걸을 수 밖에 없다.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길의 끝은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 믿을건 오로지 성실하게 움직이고 있는 내 두 발 뿐이다. 작은 걸음일지라도 쉬지않고 꾸준하게 걷다보면 조금씩 앞으로, 결국엔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된다.

뭐든 성실하게 꾸준히 해내는 것은 어렵다. 험한 길을 만나도, 완만한 평지를 만나도 오늘 내게 주어진 걸음을
걷는다면 언젠간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불변의 진리 하나만 기억하고 살아도 삶이 평탄할 것만 같다.

걷다보니 한 순례자를 만났는데 그는 무려 쓰레기를 주으며 길을 걷고 있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부담스런 길에서 진정한 봉사자를 민나다니. 감탄하며 한 컷 담아본다.


쓰레기를 주으며 걷는 순례자


그렇게 약 13km를 걸어 타다호스 Tadajos 라는 작은 마을에서 묵어가기로 했다. 오늘까지는 무리하지 않고 몸을 예열시키기로 한다. 그래도 다행히 몸 컨디션이 점점 회복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내일도 꾸준히 조금씩 걷다보면 또 그만큼 앞으로 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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