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등 뒤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타다호스는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작은 동네인만큼 Bar나 슈퍼마켓까지도 부실해 점심, 저녁까지 간단히 때울 수 밖에 없었다. 아침에 배가 고파 눈이 떠졌다. 얼른 준비하고 나서서 다음 마을에서 맛있게 아침을 먹어야지 다짐하고 길을 나섰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열심히 걸었다. 걸음에 몰두하다 오늘은 왜 해가 뜨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세상에 내 등 위에서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앞만 보고 걸어가다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가장 멋진 풍경은 때로 내 등 뒤에서 펼쳐진다. 가끔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갖고 살아야 이런 풍경도 놓치지 않는다.
한 시간정도 걷다보니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 Rabe de las Calzadas 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요즘엔 점점 걷는 생활 자체가 패턴화되어가고 있다.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간단히 준비해 여섯시반~늦어도 일곱시 사이에 길을 떠난다. 부지런히 걷다가 만나는 첫 번째 마을에서 아침을 챙겨먹는데 보통 카페 콘레체(카페라떼) 한 잔과 오렌지주스 한 잔, 바게트 토스트 또는 스페인식 오믈렛인 또르띠아를 먹는다. 여기서 아침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던 중 주인 아저씨의 인상이 좋아보여 무작정 Bar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역대급 친절을 맛봤다.
주인 아저씨의 이름은 호세였다. 지난번 로르카 에서 묵을때 만났던 친절한 주인분 이름도 호세였는데 호세라는 이름에 좋은 기운이 흐르나 싶을 정도였다. 간단히 아침 메뉴를 주문했는데 아저씨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이라 대답했더니 이미 이 곳을 지나간 한국 사람들의 메모를 자랑스럽게 보여주셨다. 그리고는 선물이라며 실로만든 목걸이를 건네주셨다. 까미노에서 받은 첫 선물이었다. 괜시리 마음이 따듯해졌다.
든든하게 한 끼를 때운 후 다시 걸음을 걸었다. 부르고스를 벗어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메세타 고원 지대가 시작된다. 끝도없이 펼쳐지는 지평선. 아마 조금 일찍 왔으면 푸른 밀밭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모두 허리가 잘려진 흔적만 남아있다.
메세타 고원 지대는 쉬어갈 틈이 없다. 그 흔한 나무 한 그루도 없어 잠시 앉았다 갈 그늘이 없다. 시간대를 잘못 맞추면 뜨거운 뙤약볕을 그대로 맞으며 걸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 길이 정말 좋았다. 끝도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을 넋놓고 계속 쳐다봤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지평선 이라는걸 제대로 본 적이 있었나. 하늘과 물이 만나 만들어내는 수평선은 환상같다면, 지평선은 마치 내가 하늘을 걷고 있는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절로 '하늘을 달리다' 노래까지 생각나 흥얼흥얼.
걷고걷고 또 걷다가 질려가던 중 눈에 띈 어느 벤치. 보자마자 배낭을 벗어던지고 누워버렸다. 길바닥에 무작정 누워본 적이 얼마만인지. 그 벤치에 누워서 본 하늘을 잊을 수 없다. 매일 앞만보고 가던 중 오늘은 뒤도 돌아보고 철푸덕 누워 머리 위 하늘도 원없이 봤다. 시선에 자유를 허하면 즐길 풍경은 배가 된다.
그렇게 약 22km를 걸어 온타나스 Hontanas에 도착했다. 보통은 부르고스를 지나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마을에서 많이 묵는데 나는 자꾸 다른 사람들과 엇박으로 걷고있다. 조금 외로워도 이렇게 내 템포를 찾아가는 과정이 마음에 든다. 이제 밥 먹고 씻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