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퇴사와 여행은 닮아있다.

모든 일은 한 마디 말로부터 시작되었다.

by 신아영

"이제 회사를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한 것 같다, 류의 말투를 쓰는 사람들은 우유부단하고 자기 확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심지어 퇴사라는 큰 결정을 상사에게 말할 때조차 저런 힘대가리 하나 없는 표현을 썼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표현을 고수해야 한다는게 나름의 철학이었는데 목적은 유약해지고 껍데기만 남아버린게 저 말투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내 인생은 놀라우리만큼 내 말투를 닮아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긴 여행, 그것도 아무도 나를 모르는 해외로 떠나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맡고 있던 일들은 어쩌지, 당장 돈을 벌지 않으면 월세는 어떻게 낼까, 언어도 안 통하는데 제대로 즐길수나 있을까, 다 내려놓고 훌쩍 떠나는 친구들을 보며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의 과거.


이랬던 나이기에 퇴사와 동시에 30일 산티아고 순례길을 결정한 건 지금 돌이켜봐도 나 자신이 놀랍다. 나 정말 퇴사한거 맞지? 그리고 이제 곧 산티아고로 떠나는 것도 맞지? 오늘도 몇 차례나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다시 생각해봐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몇 주 후 내가 저 길 위에 있게 된다니!



"무언가로부터 떠나려면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에게 이별을 말하는건 애초에 내 전공이 아니었다. 그간의 모든 헤어짐은 모두 상대가 내게 이별을 고하거나, 조직에서 맡은 임기를 꾸역꾸역 채우고 나서 찾아오는 자연스런 헤어짐 뿐이었다.


그러다 첫 회사를 떠나면서 나는 내 인생의 이별에서 가장 적극적인 포지션을 취하게 됐다. 한 번도 제대로 해외에 나가본 적도 없으면서 맹랑하게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시작에는 나의 "말"이 있었다.


"나 이제 회사를 그만두려고 해."

"회사 그만두고는 한 달정도 쉬려고. 여행을 다녀올까?"


수 천 번 고민해봤자 이를 주위 사람에게 말하기 전까진 나의 개인적인 잡념에 불과했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내뱉고 난 순간 묘한 힘이 생긴다. 내 생각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에게 힘을 얻기도 하고, '니가 잘 하나 보자' 식으로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에겐 내가 한 말에 꼭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오기까지 생긴다.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하고,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게 해준 것도 저 한 마디를 누군가에게 말하면서부터다.


퇴사, 퇴사 후 한 달 해외여행. 모두가 부러워하고 대단하게 여기는 인생의 큰 결정들.



유약한 나를 움직인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의 말 한마디였음을 떠나기 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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