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에 필수조건은 없다
함께 걷는 무리들의 희망찬 노래소리와 함께 아침 까미노 길을 나섰다. 고작 한 시간 일찍 나왔을 뿐인데 사방은 암흑 투성이다. 준비해갔던 손전등을 켜고 설렘 반 두려움 반 걸음을 내딛는다. 어제처럼 또 길을 잃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두려움이 밀려오자 순간적으로 이 길이 맞나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분명 길은 하나였는데, 내가 실수로 화살표를 놓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앞뒤로 잘 보이던 순례자들도 순간 시야에서 사라져버려 두려운 마음은 커져만 갔다.
잘 걷고있다고 마음을 추스리며 한 발짝씩 앞으로 내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다시 나온 노란 화살표에 마음을 놓고, 요즘은 이렇게 노란 화살표와 말도안되는 밀당을 펼치곤 한다.
오늘 걷는 길은 산을 둘러서 나 있는 붉은황톳길이다. 길의 구성성분이 무엇이냐에 따라 발바닥과 발목에 가해지는 충격이 확연히 달라진다. 황톳길은 밟을 때 약간의 쿠션감마저 느껴지는 걷기 좋은 길이었다.
길에서 만난 이탈리아 출신 루카와 이야기를 나누며 3km 가량을 걸었다. 사업체를 운영한다던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휴식을 선물하고 싶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았다고 했다. 둘 다 이건 휴식이 아니라 고된 노동이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걷다보니 저 멀리 푸드트럭이 보였다. 루카는 오늘 좀 더 많이 걸어야 한다며 먼저 길을 떠났고 나는 오렌지 주스를 먹고싶어 트럭을 구경하는데, 여기 뭔가 이상하다. 돈을 받지않고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한켠에는 기부함이 있었고, 많은 순례자들이 정말 기쁘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나도 주스 한 컵과 무려 삶은계란까지 득템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함께 세워둔 곰돌이조차 귀여워서 훈훈했다.
부부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부제 푸드트럭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두 사람은 기꺼이 순례자들을 맞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기쁜 얼굴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 잡는게 인생의 목표인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땐 정말 괴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얼굴에서 풍겨나오는 행복의 아우라는 감히 우리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들의 삶은 우리가 보기엔부족한 요소들이 훨씬 많을지언정 이들이 불행한 삶을 살고있다고 누가 평할것인가.
열심히 걷다보니 몇몇 작은 마을을 지나쳐 아스트로가에 도착했다. 예전엔 목표해뒀던 마을까지 가는게 죽을만큼 힘들었는데 몸이 적응을 해가는지 이제는 약간의 에너지가 남는다. 한 마을을 더 걸어가볼까 하다 목표로 삼았던 아스트로가 공립 알베르게에서 하루를 쉬기로 했다.
알베르게에는 부엌도 있고 식자재를 사와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데 나는 혼자라 매번 밖에나가 간단한 음식들을 사먹곤 한다. 오늘은 나가서 치킨버거를 먹었고, 점점 한국 음식들이 그리워지는 중이다. 한국에 가면 라면을 정말 맛있게 끓여먹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