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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걷는길 (24) 사리아에서 포르투마린까지

이제는 마음도 몸도 걷는 것에 익숙해져가는데

by 신아영

사리아 Sarria - 포르투마린 Portomarin 25km



오늘부터 5일동안 110km 가량을 걸어 순례길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제는 몸이 걷는 것에 적응을 해가는게 느껴진다. 초반엔 16km만 걸어도 몸이 너무 고됐는데 지금은 한시 전까지 열심히 걸으면 20-22km까지 걷는다. 요즘 가장 힘든건 거리보단 더위. 더워지기 전에 걸음을 마무리하려면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사리아에서부터 100여km를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순례자 증서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구간만 걷는 단기 순례자들도 꽤 많이 볼 수 있다. 여름은 특히 극성수기라 단체로 오는 사람들도 많아서 예전의 순례길 분위기완 다르게 왁자지껄하다.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걷는 기간 직전에 이탈리아 휴가 시즌이 끝나서 단체가 많이 빠졌다는 점. 우연치 않게 타이밍이 좋았다.

사리아를 벗어나 숲길을 걸었다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침에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뿐만 아니라 오늘 걷는 구간에선 특별한 점심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설렜다.

특별한 점심, 한국 라면이다. 예전 순례자 카페에서 사리아 마을을 지나 다음마을로 가는길에 생뚱맞게 어느 작은 슈퍼에서 한국 라면을 판다는 정보를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순례길 내내 꿈에서조차 아른거리던 라면!

나는 정말이지 외국에 나와서 굳이 한식당에 가고 라면을 먹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까미노를 걷다보니 절로 한국음식 생각이 난다. 순례길에서의 식사는 미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절규에 가깝기 때문에 더더욱 한식이 그립다.

소망을 품고 마을을 지나다보니 기부제로 운영하는 푸드테이블들이 보인다. 이 구간부터는 순례자들이 저마다 크레덴셜에 스탬프를 열심히 찍는데 하루에 두 개 이상의 스탬프를 받아야만 걸은것으로 간주해 순례자 증서를 발급해준다는 말들이 있어서다. 기부 트럭에서 나도 스탬프를 찍었다. 포켓몬고가 포켓몬 잡는 재미가 있듯 여기 순례길에서도 나름대로 예쁜 도장을 모으는 재미가 존재한다.

이건 한국 순례자들이면 무조건 사진찍을 수 밖에 없음

이제 나올때쯤 됐는데 싶을때 작은 슈퍼가 있었고 익숙한 한국어가 보인다. 김치와 밥, 한국 라면 있어요. 타지에서 듣고 보는 한글이 그렇게나 반가운데, 내가 사랑하는 라면까지 있다니 여긴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가격을 물어보니 컵라면은 2.5유로, 봉지라면은 1.9유로다. 한국 가격과 비교하면 정말 비싸지만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뜨거운물도 제공해준다고 하셔서 제일 좋아하는 육개장 컵라면을 골랐다. 면이익어가고 내 마음도 바운스 바운스.

유럽 수출용 육개장 ㅋㅋ


첫 젓가락을 떠 입으로 넣는데 역시 감동, 그런데 기대한 만큼은 아니다. 라면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있었나. 그렇게 고대하던 라면이었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서 그랬는지. 하지만 열심히 먹었다. 언제 또 먹을지 모르니깐. 심지어 봉지라면까지 하나 더 구입.

목적지인 포르투마린까지 가니 어느덧 오늘은 26km를 걸었다고 아이폰이 알려준다. 첫 주에 비하면 다리와 몸이 걷는 이 상황에 적응해 가는 것 같다.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다. 여기 생활도 익숙해져 가는데 이제는 또 돌아가야 할 날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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