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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걷는길 (25) 포르투마린에서 팔라스데라이

나와함께 걷는이가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

by 신아영

포르투마린 Fortomarin - 팔라스 데 라이 Palas de Rai 27km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숲길

요즘은 처음 걷기 시작한 8월초보다도 해가 늦게 뜬다. 어플로 살펴보니 요즘은 해 뜨는 시각이 7시 40~50분 정도. 그래서 아침 길이 더 무섭다. 컴컴한데 매번 초반에 도시를 빠져나가는 길은 숲이 우거져있어 더 그렇다. 뭐라도 튀어나올까봐 매번 쫄아서 걷는데,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이 나를 위로한다.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있는 사람이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

산티아고로 가까워질수록 길 위에는 사람이 많다.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걷는 단체들 부터 부부, 가족으로 보이는 소규모 그룹까지. 짐이 가벼워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리아에서 출발한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걸었던 순례길 구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접어들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 내가 여기서 놀랐던건 청소년 단체들도 꽤 많이 온다는 사실. 열다섯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들이 정말 빵빵하게 스피커로 노래를 틀고 노래를 합창하며 씩씩하게 걷는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홀로 걷고 있으니 부쩍 쓸쓸했다. 원래는 길 위에서 오며가며 비슷하게 출발한 사람들이 지나치면 얼굴도 서로 알아볼 정도인데, 이 구간은 사람이 많은지라 까미노 길에서 만날때 열심히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도 여기선 묵묵하게 걷는다. 군중속의 고독을 길 위에서 다시한번 느끼다니.

이제는 보이는 풍경이 비슷해서 질릴법도 한데 하늘의 구름이 먼지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을 보면 매번 감탄이 나온다. 여기서 봤던 풍경들 중 제일 인상깊은게 하늘이다. 해 뜨기 직전의 하늘, 별이 가득한 하늘, 맑고 청량한 날의 하늘. 서울에서는 빌딩이 시야를 가려 지나치던 하늘을 여기서 맘껏 본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커플이었다

오늘은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야트막한 언덕길이 많았다. 이제 완전히 못 걷겠다 싶을정도로 힘들진 않는데 많이 걸을수록 발목과 발 뒤꿈치가 열이나면서 통증이 생긴다. 쉬려면 마을에 가야하니 그 마음으로 더 열심히 발을 움직여본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다리 긴 유럽 친구들을 심히 부러워하는 마음을 숨기고.

오늘은 27km를 걸어 팔라스 데 라이 마을에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왠지 오늘은 편하게 쉬고싶어 새로 생긴것으로 보이는 사립 알베르게에 자리를 잡았다. 침대를 같이쓰는 여자에게 간단히 말을 걸었더니 자기는 영국에서 왔는데, 영어가 너무 하고싶었다고 무지막지 영어를 쏟아냈다. 미안 나는 영어를 잘 못해. 픙성한 여행을 완성하는건 역시 언어다. 이 마음 그대로 한국가서 공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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