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산티아고 걷는길 (26) 아르수아에서 오 페드루소까지

내 몸을, 내 마음을 관찰하게 만드는 길

by 신아영

아르수아 Arzua - 오 페드루소 O Pedrouzo



오늘은 걸을 수 있을까. 어제 이런저런 일들로 이미 멘탈이 약해진 상황에서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는데 걱정부터 들었다. 그러는 중에 알베르게에서 만나 친해진 프랑스인 크리스텔이 해준 말이 내게 용기를 줬다.

"천천히 가도 되고, 중간에 그만둬도 상관없어"

크리스텔은 3년에 걸쳐 까미노 길을 걷고 있었다. 이번년도에 드디어 산티아고까지의 일정을 마무리한다며 굉장히 고무되어 있었다. 프랑스인 치고 영어를 굉장히 유창하게 해서 놀랐는데 알고보니 영국에서 대학까지 마쳤다고. 프랑스인들은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뛰어나서인지 항상 모든 사람들이 "올라!"를 외칠 때 "봉주르"라고 인사하는데 크리스텔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낙오되고 뒤쳐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이 곳 까미노에서도 계속됐다. 누군가와 경쟁하려고, 뭔가를 이루려고 온게 아님을 계속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야 했다. 어떤 상황이든 다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려면 얼마만큼의 해탈이 필요한건지. 나는 자꾸 누군가가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에 의지해 한 걸음씩을 내딛고 있었다.

나를 언제나 앞서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다행히 발목이 어제만큼의 통증이 있진 않아서 조금씩 걸을 수 있었다. 걷는 것이 신기한게 자동차 시동 걸리듯 삐걱대다가도 탄력을 받으면 언제 아팠냐는 듯 앞으로 슝슝 잘 가게 된다. 시동이 걸리기 전까지가 가장 절뚝절뚝 거리는 타이밍이고.

발 어느 부위가 먼저 땅에 닿는지, 발목이 틀어지지 않게 똑바로 걷고 있는지를 계속 신경쓰며 걷는건 처음이다. 그동안 내가 내 몸에 얼마나 관심이 없었는지를 새삼 느끼고 또 느낀다. 평소에 근력 운동과 걷기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만 한번 더 먹게되는 오늘.

처음 시켜본 츄러스, 초코음료


중간에서 만남 작은 바에서 스페인 츄러스를 시켜먹었다. 어디서 들은건 있어서 츄러스를 찍어먹을 초콜릿 음료도 하나 같이 시켰는데 세상에나 큰 머그컵을 가득가득 채워서 대령해주시는데 사진을 다시봐도 단맛이 입에서 맴돈다. 츄러스는 겉은 바삭, 속은 쫄깃하다는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듯한 식감이었다. 엄지척.

스탬프를 찍기위해 줄서있는 순례자들

하루에 도장을 두개 이상씩 받아야 한다는 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스탬프가 유난히 많이 비치되어있고 사람들은 열심히 도장을 찍는다. 나 여기 다녀갔다는 흔적의 스탬프. 쾅 하고 찍었을 때 문양이 예쁘게 남으면 괜시리 흐뭇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이 스탬프를 찍을 날도 하루 남았다.

오 페르두소까지 걸어왔고, 내일 대망의 산티아고 순례길 일정을 마무리한다. 끝 이라는 말이 아직은 실감나지 않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걸음을 걸으면 되겠지.


25km 남은 구간을 지나 이제는 끝으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산티아고 가는길 (8) 팔라스 데 라이~아르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