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걷는길 (마지막) 페드루소에서 산티아고까지

순례길은 끝나도 인생의 길은 계속된다

by 신아영

오 페드루소 O Pedrouzo - 산티아고 데 컴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la 20km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어떤 기분일까 항상 궁금했는데, 막상 매일 아침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순례자들은 부지런히 아침 길을 떠났고, 나도 역시 아무렇지않게 마지막 짐을꾸린다.

처음 순례길을 걷던 날부터 마지막 구간을 걸을땐 무슨 기분일까 상상해왔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일까, 드디어 끝난다는 해방감일까. 이도저도아닌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고 길을 나섰다. 마지막 날이라 마음을 먹어서 그런지 걸음을 빨리 걷게된다.

걷다가 아침을 먹으려 Bar에 앉았는데 잠시 후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지난번 길에서 잠시 스치듯 만났던 보라 언니다. 그 후로 한번도 보지 못해서 카카오톡으로 연락만 하고 지냈는데, 이렇게 길에서 만나다니. 너무 반가워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반대방향으로 앉아있었다면 마지막 인사마저 하지 못했을것. 신기한 우연에 또 한번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아침식사가 두 사람의 마지막 일행을 만들어줬다!

그렇게 수다를 떨며 함께 아침을 먹는 사이 또 한명의 반가운 얼굴이 지나간다. 폰페라다까지 길을 함께했던 동진이다. 우리는 길에서 만나 다시금 마지막 일행이 되었다.

걸음이 느린 나 때문에 둘이 페이스가 어긋날까봐 먼저가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한참 앞서가다가도 나를 기다려주고 하는 식으로 계속 함께 걸었다. 줄곧 혼자걷던 동진이는 마지막 날 혼자걷는 길이 꽤 서글펐다고 말한다. 길 위에서 만났던 인연들이 자연스럽게 또 헤어지고 하는 과정들이 슬펐다고. 너는 아직 사람의 인연을 소중히하는, 열정있는 나이라고 위로해줬다.

생각해보면 이 길 위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은 숨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워서 헤어짐에 대한 아쉬운 감정을 느낄새도 없이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반복됐었다. 그러는 와중에 의사소통이 더 자유로운 한국인들과는 좀 더 애틋한 감정이 생겼었는데 이렇게 나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주는 이들이 또 있다는것 자체로 위안을 얻는다.

익숙하던 안내판도 이제는 안녕을 말할 때다

주위의 순례자들도 저마다 조금은 들떠보이는 발걸음이다. 알수없는 흥분된 공기가 이 길위를 가득 메운다. 열두시 전까지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순례자들을 위한 향로 미사를 볼 수 있다는데 내 느린 걸음으로는 역시나 무리일듯 싶다. 마지막 날까지 느린 걸음은 나를 붙잡고, 또 이에 순응하는게 반복되고 있다.

청소년 단체들의 흥은 절정에 달해 길 위는 시끄러운 노래소리로 가득하고, 마지막 Bar를 지나 신발끈을 다시 고쳐 묶었다. 이제 이렇게 신발끈을 고쳐 묶는 것도 마지막인데 발목이 조금만 더 버텨주었으면. 신발끈을 고쳐묶듯 마음까지 함께 고쳐묶었다.

슬슬 도심의 기운이 느껴지고 큼지막한 산티아고 컴포스텔라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정말 도착했구나.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걸었는지 처음의 목적은 다 다를지라도 길을 함께걸었던 사람들의 표정은 저마다의 환희로 가득하다. 거대하고 웅장한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한참을 넋놓고 사진을 찍다 순례자 증서를 받으러 움직였다.

산티아고 대성당
순례길 완주 증서

순례길을 완주한 이들에게는 작은 증서가 선물처럼 주어진다. 나도 시작한 도시를 말하니 총 775km라는 숫자를 새겨 한 장의 증서를 받았다. 비록 중간중간 걷지못한 코스들이 뻥뻥 구멍으로 남아있지만 다음번에 다시 걷기를 소망하며.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산티아고 탐방과 밤의 이야기들은 별도의 에피소드에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자. 그새 흙먼지 가득덮힌 등산화와 자꾸 쑤셔오는 왼쪽 발목, 손목과 발목에 조금씩 올라온 베드버그 흔적들, 땀에 쩔은 오스프리 배낭이 남았다. 경이로웠던 풍경들은 곧 기억에서 잊혀질테고 여기서 만난 인연들도 남처럼 멀어질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살아가다 가끔 숨이 차서 걷기 힘들 때, 여러 괴로움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어느 갈림길을 선택해야할지 모르겠을 때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릴테다. 순례길은 끝났지만 앞으로 인생의 길은 무한하게 펼쳐질테니.




산티아고 성당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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