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존재는 누군가의 필요로 인해 확인되는 법.
그동안 나는 외로움이 나 혼자 있을 때 생기는 감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능동적으로 외로움을 찾아 홀로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에서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확인했다.
외로움은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 무엇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몸 속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이었다. 모두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나는 얼마나 하찮은 사람이었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으며 물밀듯이 쏟아지는 감정이 외로움이다. 그 때 깨달았다. 나의 존재는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형성되는 것임을.
종군 사진작가였던 어머니의 사고 이후 남겨진 아버지와 두 아들은 각자 어딘가 한 군데씩 망가져가며 어머니의 부재를 드러낸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아내에게조차 어머니의 사고를 말 못하는 조나(제시 아이젠버그), 반항하는 아들에게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지만 정작 자신의 치부를 감추는 아버지(가브리엘 번), 천재적인 글쓰기 소질을 가졌지만 반항심이 넘치는 콘래드(데빈 드루이드)까지.
이자벨(이자벨 위페르)은 매 순간이 고비인 전쟁터, 일터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 역할도 놓을 수 없어 늘 집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토록 그리던 집에 돌아와서는 남겨졌던 세 사람의 일상을 마주하기가 불편해지곤 한다.
그녀의 부재 가운데서도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그녀를 그리워하면서도 새로운 흥미거리를 찾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없을 때 남겨진 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그들이 '별 일 없이' 잘 지내는 상황이 어색해지는 순간, 존재의 이유를 모르겠는 상실감이 들이닥치고야 마는 것이다.
뒤죽박죽 섞인 영화 내 시간의 흐름은 살아있는 이에게 뜬금없이 떠오르는 망자(亡者)의 기억을 연상케한다. 굳이 억지로 꺼내려 하지 않아도 밥 먹다가, 걷다가, 노래를 듣다가, 말도 안 되는 순간에 떠오르는 그리운 이에 대한 기억을 연출해낸 감독의 기질이 놀라웠다.
어쩌면 그녀가 영영 떠나버리고 망가져버린 세 남자의 일상을 보며 그녀는 하늘에서라도 제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은 기분이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이자벨의 공허한 표정이 주는 울림이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