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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영 Oct 25. 2016

수영

감각의 열림, 가치관의 확장

수영을 배운지 꼭 한달이 되었다. 


물은 언제나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목 위로 물이 닿는건 세수할 때 말고는 내게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그 흔한 목욕탕 잠수내기조차 내게는 공포스러운 일이었으며 친구들과 놀러를 가도 나는 얕은 물에서 물장구나 조금 칠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물 속에서 숨쉬는 법도 익혀가고, 어떻게 발을 움직이면 앞으로 빠르게 나갈 수 있는지 체득중이다. 물 속에서 수영을 하는 것은 남의 일인줄만 알았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 숙소에서 우연히 만났던 수영장. 이 위를 자유롭게 노닐던 사람들의 자태를 잊을 수 없다.


수영 잘 하는 사람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동경의 대상이란건, 내가 그렇게 될 수 없을 때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나는 정말이지 영영 물과 친해질 수 없다고 확신했다. 어렸을 적 물가에서 놀때마다 코로, 입으로 물을 먹었던 그 매운 기억이 계속 나를 맴돌았고, 물은 내게 즐거움보단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우연히 수영장을 맞닥뜨렸을 때, 그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을 때. 

처음으로 단순한 동경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나도 저들처럼 물을 느끼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 한국에 돌아가면 꼭 수영을 배워야지. 다짐한 말을 곱씹으며 한국의 친구에게 선언했다. 돌아가면 수영을 배우겠다고. 

 



"수영 배운다더니 왜 지금 시작하지 않아?" 


한국에 돌아와서는 또 그때의 감정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었다. 그러다 친구가 무심코 내게 건넨 말 한마디가 핀잔처럼 들려 아차 싶었다. 맞다, 나 그렇게 선언했었지. 부끄러운 마음으로 급하게 집 근처 수영장을 찾아 등록을 마쳤다. 등록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등록을 마치고, 수영복과 물안경, 모자까지 샀는데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 이제 정말 물을 이겨낼 수 있을까. 과연. 


그리고 처음 수영장으로 나간 날. 수영장 특유의 냄새와 기합 넘치는 수강생들의 모습에 나도모르게 움찔, 몸이 굳었다. 



"수영은 호흡이 중요합니다. 될 때까지 몸으로 익혀야해요" 


아 선생님. 

저는 아예 물에 얼굴을 넣는것 조차 버거운 사람이에요. 


무서워서 자꾸 몸이 돌처럼 굳었다. 그렇지만 무표정한 선생님의 얼굴은 수영장 물만큼이나 차가웠고, 어리광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는걸 체감하자 방법이 없었다. 무서워도 한 번 넣어보자. 얼굴을 넣자마자 반사적으로 다시 물 위로 탈출하는 행위가 반복됐다. 물안경을 끼고 있어도 두려움에 눈을 꼭 감아버렸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거의 반 포기한채 하라는대로 해보자 맘먹은 후부터 조금씩 물에 적응해가는 것을 느꼈다. 물안경이 보호해주고 있음을 실감하고 눈을 뜨게 되었고, 당황하지만 않으면 물 속에서 숨을 내쉬는 채로는 물을 먹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두려움과 맞닥뜨리면서,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무지가 가져다준 두려움, 두려움이 차단해버린 기회


나는 물을 몰랐기 때문에 무서워했다. 내가 물을 몰랐던 이유는 물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건 물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물에 대해 갖고있는 두려움은 무지와 무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기까지 꼭 한 달이 걸렸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물을 전부 알지 못한다. 아마 평생이 되어도 물을 다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예전만큼 물이 무섭지는 않다. 어린아이 걸음마 배우듯 이제 겨우 숨쉬는 법 하나 배워놓고는 세상 다 안것처럼 뿌듯해하는 중이라 부끄러울 따름이지만.  




수영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있다. 내 감각은 열리고 가치관은 확장되는 중이다. 앞으로 내가 알아갈 물의 세계가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할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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