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결혼식
약 삼십여년간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족이 되려고 준비중이다. 서로 속해있던 가족을 벗어나 둘만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될텐데, 이 한 번의 선택으로 우리는 어찌보면 최소 몇십 년은 운명 공동체로서 살아나가야만 하는 그런 둘도없는 끈끈한 관계로 재탄생한다.
이 둘만의 다짐을 제3자가 보는 앞에서 선포하는 행사가 결혼식이다. 우리의 첫 시작을 친한 지인들에게 축하받고 싶은 마음도 잔뜩이고, 이왕이면 기억에 남는 결혼식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도 다분하다. 마음은 조급하고 시간은 촉박한데 다른 일들도 산더미인 현실 속에서 우리는 결국 약간의 타협을 하며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둘이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후 가장 먼저 떠올린건 요즘 트렌드로 떠오른 '작은 결혼식'이었다. 허례허식을 최대한 줄이고,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우리만의 작은 파티로 꾸미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날 좋을 때 야외에서 하면 어떨까? 소풍온 것처럼 하객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고 꽃장식 대신 작은 화분으로 입장하는 길을 장식해도 좋겠다.
그러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새삼 깨닫게 된 점,
결혼식은 우리 둘만의 행사가 아니었다.
사실 결혼시기가 정해진 것 역시 부모님들의 영향이 컸다. 이왕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다음에는, 이제 곧 퇴직하시는 예비남편의 아버지의 퇴직일정을 고려했다. 결혼식 일정을 그렇게 맞추고 보니 이제는 초대 인원이 걸린다. 작은 결혼식의 취지는 정말 가까운 지인만을 초대하는게 핵심인데, 그간 사회생활을 하시며 여러 곳에 축의금을 내셨던 부모님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고 싶은 마음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결국 작은 결혼식 대신 합리적인 가격으로 많은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대학교 교우회관으로 결혼식 장소를 잡았다.
이쯤되니 진지하게 드는 생각. 결혼식은 누구의 행사인가.
여러가지 타협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행사가 '우리'의 행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장소와 일정은 부모님들의 뜻에 따랐다면, 그 외의 식 준비는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소신껏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행할 수 있었던 건 결혼을 준비하며 나와 상대방이 서로 지키고 싶은 원칙들을 충분하게 협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웠던 몇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우리에게 중요한건 결혼'식'이 아니라 앞으로 함께한다는 사실이다. 결혼식 준비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돈을 낭비하지 말자
결혼식 준비에 많은 에너지가 드는 것은 이 식이 평생 한번 뿐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 조금 가볍게 생각하면 굉장히 합리적이면서도 저렴하게 결혼식 준비를 진행할 수 있다. (사실 돈이 없어서 돈을 낭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함정이지만. ㅋㅋ)
2. 결혼식 및 결혼 준비에서 각자가 하고싶은 것, 하기 싫은 것이 있다면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 하자.
나는 폐백을 비롯한 각종 '허례허식'을 하고싶지 않았고, 상대방은 차려입고 몇 시간동안 스튜디오에서 사진 찍는 것이 괴로울 것 같다고 했다. 각자의 의견을 취합해 예비 시부모님이 조금 섭섭해 하셨지만 폐백은 하지 않기로 전달했으며, 웨딩 사진은 기념이 될만한 수준으로만 가볍게 찍었다.
물론 아직도 준비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도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서로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단 잘 해결해나갈 방법에 초점을 맞춰 얘기를 진행하다보면 짜증이 났다가도 누그러지는 것이 느껴진다.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라더니, 결혼 준비를 하며 다시 깨닫는다.
인생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타협이다.
어느 방향으로 타협해 나가냐에 따라 우리 인생도 나만의, 우리만의 색이 입혀지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