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휘 Mar 21. 2016

일을 잘하면, 그래서요?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김종수 배백합 없음벨라 오수경 여정훈 이서영

 페이스북의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그룹에서는 자신의 '일 못함'을 인증하고 서로의 '일 못함'을 보며 위안을 받거나, 직장 생활의 고달픔을 나눈다. 그리고 그와 무관한 일들도 올라온다. 난 꽤 오래전에 가입했고 그 곳에 올라오는 글들을 좋아했지만, 글을 써본 적이없다. 


 나는 일을 못하진 않는다. 난 일못이었던 경험이 있다. 군대에서 였다. 내가 가진 능력 중에 가장 못하는 두가지가 중요시 되는 곳이었다. 영어와 체력. 내 영어 실력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그곳에서는 시원찮은 정도였다. 그 당시의 체력은 엉망이었고. 티를 많이 내진 않았지만 소심해졌고 늘 화가났다. 다행히 일이 익숙해졌고 부서배치 후에는 다른 카투사들과 서로 비교당할 일이 없어지니 이런 감정에서 벗어났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경향신문에 연재된 칼럼에 새로운 글을 더한 것이다. 그래서 신문을 통해서 읽었던 글들이 꽤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묶어서 보니 암울하다.

1부 일도 못한다는데 서럽기까지
2부 일 못한다, 일 잘한다 사이의 애매함
3부 내가 일을 못하는 일리있는 이유
4부 우리 모두 행복하면 안되나요?

 주제별로 글이 묶여있다. 여섯명의 공저자가 주제마다 동일한 비율의 글을 쓴건 아니다. 나는 앞에서부터 읽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별로 읽었다. 예를 들어, 없음벨라님의 글을 앞에서부터 쭉 찾아서 읽고 오수경님의 글을 다시 앞에서부터 찾아 읽었다. 난 앞에서부터 쭉 읽을 때보다 좋았다. 서로의 문장이 달라서 난 쉽게 집중할 수 없었다.


 직장에 첫발을 디뎠던 2010년. 난 직장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다. 아무런 연고도 없었다. 동생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한달에 한번 볼까했다. 난 20대 세대론에 관한 강좌를 들었다. 여전히 세대론 특히 20대 개새끼론을 비롯한 혐오론이 판을 치던때였고, 삼포세대라는 말이 막 등장하던 때였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 관해 매주 다른 강사가 와서 말했고 답했다. 단편선, 한윤형, 박신영, 선대인이라는 사람을 여기에서 처음 알았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집중하다가도 일순간 멀어졌다. 난 어린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었고,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위로할만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되다가 2010년의 거리감을 느꼈다. 내 일은,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라고 할 수 있는 류인가. 안다. 여기서 일을 못한다는 것이 정말 일을 못한다는 뜻이 아님을, 일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구조 속에서 일한다,는 선언임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교사가 일을 못한다,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까.


 난 일못 그룹이 희생양이된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편견과 생각들을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낸 희생양이 일못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못은 정말로 어느 면에서는 일못일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무고하다. 희생양이 되기 쉬운 조건을 지녔을 뿐. 

 

 일을 잘하면 그래서? 라는 질문에 우리는 제대로된 답을 할 수 없다. 저 '그래서' 이후에 희망적인 무언가가 나와야 하는데, 희망적인 무언가가 없기 떄문이다. 희생양이 무고한 것과 같이 희생양을 만드는 이들도 무지하고 어느정도 무고하다.


당신이 일못처럼 느껴질 때 속으로 생각하자.

"일을 잘하면, 뭐? 그래서 뭐?"

"내가 일을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 건, 역시 내가 귀여운 탓이야."


안다 당신은 귀엽지 않다. 

그래도 일을 못한다 느끼는 건 근거가 없으므로, 사실이 아닌 근거를 갖다 붙여도 괜찮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더 깊이 이해하면, 좀 더 나아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