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까뮈 , 김화영 역, <결혼 여름>, 책세상,
무언가를 보고 아름답다, 말했던 적이 오래다. 김연수와 신형철, 김훈의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피터 도이그의 2000년대 그림을 도록에서 봤을 때, 그리고 몇년 전의 그. 내가 "아름답다", 뱉었던 기억의 전부다. 이 아득함은 돌이켜보면 아름다움이 귀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름다움에 심드렁해져서이다.
무언가를 보고 읽고 느끼면서 삶이 변하거나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지나간 후에 더 허무해지거나 외로워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아름다움을 느낀 후에 외로워졌고, 그런 날들이 늘어갔다. 아름다움을 믿지 않는다.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힌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한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알베르 카뮈,티파사에서의 결혼
<결혼 여름>은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집이다. 책세상의 알베르 카뮈 전집의 1권이다. 흔히들 '결혼'과 '여름'은 그의 산문 중 최고로 꼽고, 현대 프랑스 산문의 절정이라고 평하기도 한다.(그르니에의 <섬>과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 같이 언급된다.) '티파사에서의 결혼'의 저 첫문장은 유명하다.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들이 내려와 산다.
난 이 책의 역자인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에서 <결혼 여름>을 알았다. 난 김화영의 책을 읽고, 이방인을 읽었고 카뮈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다. 나에겐 끝까지 읽어낸 카뮈의 책이 없다. <이방인>도 뫼르소가 재판에 회부되고 난 후로 읽다 포기하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페스트>는 중반까지 읽으면, 늘 다른 일정에 영향을 받아 독서를 중단해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책, <결혼 여름>도 발췌독을 하고있다. 전부를 읽을 수 없다는 예감이 들어 미리 끄적인다.
그의 소설과 산문은 다른 것 같다. 그의 에세이에서, 눈 앞의 아름다움을 문장에 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보인다. 김화영의 애정 어린 설명을 먼저 읽어서 인지 모르지만, 알제의 햇살과 그 햇살이 내려앉은 30-40년대의 알제는 카뮈의 문장을 닮았을 것 같다. 그래도 어느 부분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탕녀인 딸들의 귀향을 위하여 대자연은 꽃들을 아낌없이 피워놓았다.
내게는 그 풍경이 마치 하늘의 첫번째 미소와도 같이 여겨졌다.
세계는 아름답다. 이 세 계를 떠나서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예를들면 위와 같은 문장들을 스쳐 지날 때면 지금이 몇시인지 알고 싶어진다. 그러고 나면 좀처럼 집중하기 힘들다. 내가 프랑스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얕아서 이리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어쩌면 내가 카뮈를 끝까지 읽지 못한 건, 이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즐거웠다. 이따금 이해가 되지 않아, 문장을 더듬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난 흥미를 읽지 않았다. 문장을 응시하면 느껴지는 감촉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봤던 풍경들이, 30-40년대의 냄새가 궁금해졌다. 내 즐거움은 순전히 아름다운 문장 덕분이었다.
난 여전히 아름다움은 믿지 않는다. 이 산문이 그리 뛰어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카뮈가 보여준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은 진짜다.
아름답다, 그래서?
여전히 답을 모르겠다. "그래서" 뒤의, 나는 막막하다. 답할 수 없기에 답을 기다리기 위해 문장을 조금 고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