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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Mar 30. 2016

그 순간, 나는 당신과 닮았다

소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김연수 | 문학동네


벚꽃 새해 ‥‥‥창작과비평, 2013 여름 
깊은 밤, 기린의 말 ‥‥‥문학의문학, 2010 가을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자음과모음, 2010 겨울 
일기예보의 기법 ‥‥‥문학동네, 2010 겨울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세계의문학, 2012 봄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문학과사회, 2012 여름 
동욱 ‥‥‥실천문학, 2013 봄 
우는 시늉을 하네 ‥‥‥문예중앙 2013 봄 
파주로 ‥‥‥21세기문학, 2013 여름 
인구가 나다 ‥‥‥현대문학, 2011 2월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자음과모음, 2008 가을 
_제33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사람들이 생각보다 그를 모른다. 김연수는 소설 읽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는 1970년생이다. 김천에서 태어났다. 일찍 데뷔했다. 먼저 시로, 그 후에 소설로. 소설로 등단한 이후로는 소설을 썼다. 지지부진하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굳빠이 이상>을 썼다. 그 후로 그는 전혀 다른 소설가가 된다.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뛰어난 소설가가 되었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상의 끝 여자친구> 이후에 나온 가장 최근에 단행본으로 묶인 소설집이다. <세상의 끝 여자친구>에 수록된 단편들을 좋아했다. 이 소설집은 작가 후기의 문장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한 노력해야 한다." 이 소설집과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사이에 꽤 시차가 있다. 그 시차에 김연수는 장편을 주로 작업했다.


 <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에는 무언가를 마음에 담아둔 사람들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마음에 담아둔 것을 예기치 못한 곳에서 다시 만난다. 수록작 '벚꽃 새해'의 남녀는 옛 연인들이다. 여자는 자신이 줬던 시계를 돌려받고 싶다며 구남친인 남자에게 연락한다. 하지만 남자는 그 시계를 팔아버린 뒤다. 그 시계를 찾기 위해 이 둘은 거리를 걷는다. 이 여정에서 둘은 자신의 과거와 만난다. 그 예전의 시간들을 떠올리고 화해한다.


어쩌다 이런 구석까지 찾아왔대도 그게 둘이서 걸어온 길이라면
절대로 헛된 시간일 수 없는 것이라오.

 


제주도에서 2015년 초에 찍은 사진 copyright(c) 2015. by 류휘.


표제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서 이모는 한국과 미국에서 차례로 사랑했던 두 남자를 여읜 채 제주 서귀포에 집을 짓고 혼자 살고 있다.  이모는 젊은 시절 서귀포 함석집에서 유부남인 영화감독과 석 달 동안 함께 살았다. 그녀는 별다른 일없이 중국집에서 함께 밥을 먹은 뒤 감독을 떠나보냈다. 그 후로 미국으로 떠나 살았다. 

"함석지붕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 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죽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얼굴이 평생 사랑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그건 불행하다고 할 수밖에 없어."


이모의 이야기를 듣는 조카, 그리고 마지막에 그 자신이 영화감독이 되어 이모를 찾아오는 감독의 아들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어렴풋이 알지만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서 비로소 동시에 경험하게 되고 닮아있는 서로를 발견하고 이해하게 된다. 


이런 순간들은 등장인물들끼리 이루어지기도 지기도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터널에서 울리는 노랫소리(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에, 우연히 찾아온 꼬마의 손에 드린 바이올린에 표정이 바뀌고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다 이해하게 되어버리는(인구는 나다) 그 순간에 이야기를 읽는 나는, 등장인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각자의 심연을 떠올리는 스스로를 돌이킨다.


행복은 자주 우리 바깥에 존재한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고통은 우리 안에만 존재한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순간', 함께하고 닮아있다.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이야기 안과 밖에서. 실생활에서 우리는 이 찰나를 기적이라 부르고, 서사에서는 감동이라 부른다.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함께 경험한다는 뜻이다.


나와 당신이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당신은 나를 몰랐고, 너는 나를 몰랐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에 회의했다. 훌쩍 시간이 지나 예기치 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각자가 자신의 심연을 동시에 떠올린다. 나는 너의 이면을, 당신은 나의 이면을 본다. 


그 순간,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당신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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