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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Apr 06. 2016

당신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영화 <족구왕>

이름: 홍만섭, 나이: 24세. 신분: 식품영양학과 복학생. 학점: 2.1, 토익 점수: 받아본 적 없음. 스타일: 여자가 싫어하는 스타일. 여자 친구: 있어본 적 없음.
 다시 읽어봐도 답 안 나오는 스펙의 주인공 만섭. 지금 당장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어도 모자랄 판에 캠퍼스 퀸 안나에게 첫눈에 반하질 않나, 총장과의 대화 시간에 족구장을 만들어달라고 하질 않나 아주 그냥 ‘족구 하는 소리’만 하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퀸카 안나가 요즘 남자애들 같지 않은 만섭의 천연기념물급 매력에 관심을 보이고, 만섭은 급기야 안나의 ‘썸남’인 ‘전직 국대 축구선수’인 강민을 족구 한판으로 무릎 꿇리기에 이른다. 이 사건으로 만섭은 ‘그저 그런 복학생’에서 순식간에 캠퍼스의 ‘슈퍼 복학생 히어로’가 되고, 취업준비장 같이 지루하던 캠퍼스는 족구 열풍에 휩싸인다. 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관심 속에서 드디어 시작된 캠퍼스 족구대회! 누가 봐도 허술해 보이는 외인구단 만섭 팀은 복수심에 불타는 강민이 속한 최강 해병대팀을 이기고 사랑과 족구 모두를 쟁취할 수 있을까?

 - 영화 <족구왕> 보도자료 중에서


 난 족구를 잘 못한다. 내가 졸업한 학교는 복학생이 드물었다. 그나마 있는 복학생도  대부분, 휴식이나 여행 혹은 다른 경험을 하기 위해 한 학기나 1년을 휴학한, 여성이었다. 대부분은 학교를 졸업하고 임용시험을 친 뒤 근무를 하다 입대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늦게 입학했다는 생각에 공부에 매진하거나 또 주류는 아니었다. 그래도 족구를 하는 광경은 이따금 볼 수 있었다.


 나도 여느 우리 학교 졸업생들처럼 군대를 다녀왔다. 교사 생활을 하다, 입대했다. 여느 군대와 달리 내가 근무한 곳에서, 족구는 흔한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 미국인들이었고, 얼마 안 되는 카투사들은 족구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복학생들에게 족구를 전수받지 못한 채 군대에 왔고, 군대에서도 족구를 전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푸에트리코인 로드리게즈는 우리가 공유하는 부엌 건너편 방에 살았다. 그는 40대로 보였으나 아마 30대 중후반 정도였을 것이다. 저녁이면 이상한 책을 썼다. (명상과 물리학을 섞어서 공모전을 준비한다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자신이 곧 본국으로 떠난다며 부탁을 했다. 늘 족구를 하고 싶었다며 친구와 함께 다음날 점심때 테니스장으로 와달랬다.

 영화 <족구왕>은 족구를 하는 복학생의 이야기다. 홍만섭(안재홍 배우)은 군대에서 족구왕으로 군림하다 복학했다. 학교에 있던 족구장은 사라질 위기이고, 족구를 하는 사람은 없다.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만 중요하다.  홍만섭은 그의 친구인 창호와 함께 족구를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일련의 사건들로 족구대회가 생긴다.


 

영화는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된다. 족구대회에 참가하는 홍만섭과 창호, 미래 팀의 여정이 한축이고 다른 한축은 홍만섭과 팀의 매니저 역할을 해주는 안나(황승언 배우)의 관계를 축으로 한다. 홍만섭은 안나에게 계속 호감을 표한다. 직접적으로 그러나 강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머뭇거림이 없다. 안나는 그런 홍만섭이 '병신' 같다고 느끼면서도 자신의 유사 연인인 강민과 비교되는 태도에 끌린다. 그리고 안나는 이 둘 사이에서 방황한다. 안나는 지속적으로 홍만섭에게 모질게 대하지만, 그것은 만섭이 그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만섭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이 영화에는 지금의 대학생들이 잃어버린 혹은 잃어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나온다. 쓸모가 없는 것에 힘을 쏟는 여유와 열정, 그리고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병신' 같음은 이제 찾기 힘들어졌다. 대학생들의 삶은 빡빡하고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은 좋은 일이나, 지금의 열심은 불안과 두려움의 허우적 됨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다루기 때문에, 현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판타지이고 중장년층에게는 복고드라마이다. 아마 지금의 십대에게는 역사물이 될 것이다. 만화 같은 연출과 영상의 톤은 이 세가지와 잘 어울린다.


 현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판타지이고 중장년층에게는 복고드라마이다.
아마 지금의 십대에게는 역사물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쓸데없음'은 잃어버려도 되는 것들일까. 돈, 명예 , 권력이라는 거창한 목적에 의해 희생되지도 않고 이 '쓸데없음'은 미래의 안정된 삶이라는 소박한 목적에 희생당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쓸데없음'을 회복하는 것은 개인이 포기하거나 마음을 돌리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안정된 삶은 겨우 버티는 삶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다운 삶 정도의 소박한 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이 '쓸데없음'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쓸데없음은 우리가 살아갈 세월을 버티게 할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상 없이 몰입했던 기억과 기쁨이, 마음보다 서툴러서 실속 없었던 젊은 날의 설익음이 우리가 기억하게 될 한 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돌이켜보면, 쓸모라는 것은 돈으로 바꿀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있는데, 돈은 그 자체로는 우리를 살아내게 할 뿐 살아있게 만들지 못한다.


 


 삶은 힘들다. 요즘의 한국은 더 힘들다. 하지만 기회가 될 때 힘껏, 짧게라도 '쓸데없음'을 붙잡자. 그것이 당신의 영광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 영광의 시대는 당신을 삶에서 이따금 지켜줄 것이다.


 그때 난 로드리게즈가 말해준 시간에 테니스 코트로 갔다. 사람들을 데려가지 못했다. 로드리게즈는 두 명의 카투사와 함께 왔다. 4명이서 공을 차고 받았다. 몇 번을 주고받았다.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여느 미국인들처럼 공을 차는 것에는 익숙지 않아 계속 놓쳤다. 수도 모자랐고 나와 두 명의 카투사도 족구에는 익숙지 않았다. 우리는 족구 이후의 사람들이었다. 겨우 한 세트를 치르고 끝냈다. 포옹을 나누면서 작별인사를 미리 나누었다. 잘 가라. 테니스장을 나와 길 쪽으로 올라와서 그가 활짝 웃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족구왕>의 미덕은 이외에도 여럿 있다. 예상되는 이야기 전개 속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학원물(청춘물?)이 보여줄 수 있는 귀여움과 풋풋함이 충분히 베여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나 다아는 정봉이 안재홍 배우의 설익은 매력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황승언이 이쁘게 나온다. 황승언이 이쁘다. 황승언은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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