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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Apr 04. 2016

너와 내가 보낸 찰나들

<시간 여행자의 아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사랑해'는 '사랑했다'로 끝난다. 사랑의 반대는 그것의 종결이다. 사랑이 지나갔고, 지금은 없다는 선언. '사랑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사람의 입술과 눈을 바라봤고, 몇 분 뒤 모든 것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사랑받고 있다를 느끼게 하는 다섯 가지 방법(언어)이 있다.(5가지 사랑의 언어|게리 채프먼) 선물, 스킨십, 인정하는 말, 봉사, 함께 보내는 '시간'. 각자는 다섯 가지 중 몇 가지를 더 크게 느끼는 것들이 있다. 이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는 스킨십과 선물에 더 많은 사랑을 느끼고, 누군가는 인정해주는 말이나, 나를 위해 하는 노력(봉사)에서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이 모두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모두 너와 내가 보내는 찰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선물을 주고받는 순간. 네 몸과 내 몸이 닿는 순간. 인정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위해 노력하고 힘을 쓰고 있구나 깨닫는 순간. 그리고 다른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고 나와 함께 하는 것을 선택했구나 느끼는 순간. 이 모든 것은 너와 내가 보내는 순간을 기억하게 한다. 어쩌면 사랑은 이런 찰나들의 엉킴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헤어지는 것은 이런 찰나들이 빛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사랑은 이런 찰나들의 엉킴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헤어지는 것은 이런 찰나들이 빛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남자의 이야기다. 1차 세계대전 말에 태어난 벤자민은 고아가 된다. 어머니는 그를 낳다 죽었고 아버지는 그를 양로원 현관에 버린다. 벤자민은 노인으로 태어나서 점점 젊어진다. 어느 날, 할머니를 찾아온 6살의 데이지를 만난다. 그 후로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살기 때문에 여러 일들을 겪는다. 그러다 벤자민(브래드 피트)은 무용수가 된 데이지(케이트 블란쳇)와 다시 재회한다.


찰나 |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그 둘은 사랑에 빠진다. 벤자민과 데이지의 나이가 비슷해진다. 이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벤자민은 젊어져 갔고, 데이지는 늙어간다. 데이지는 출산을 한다. 결국 벤자민은 데이지를 떠난다. 세월이 흘러 데이지는 새로운 남편을 만났고 시간을 흘렀다. 딸은 청소년이 되었다. 그 앞에 벤자민이 나타난다. 그 둘이 데이지의 연습실에서 재회하는 장면에서 이 둘의 눈빛과 말투는 그들이 보낸 시간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준다. 데이지와 벤자민의 사랑은 지나가지 않았다.

 

재회 |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은 길지 않다. 벤자민의 나이와 데이지의 나이가 만나던 찰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둘의 미래는 불안했다. 벤자민은 젊어져 가고, 데이지는 늙어간다. 이 확고한 미래 때문에 관계는 불확실했고 결국 헤어졌다. 그러나 그 찰나가 이 둘의 인생을 바꾼다.



[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보다, 케이트 블란쳇을 자주 만난다.]



 <시간여행자의 아내>라는 영화가 있다. 헨리(에릭 바나)는 시간여행자다. 그는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알몸으로 낯선 시간, 낯선 곳에 떨어진다. 추위에 떨고, 경찰에게 쫓기기 일수다. 그러다 클레어를 만난다. 클레어(레이첼 맥아담스-시간 여행하는 사람은 늘 그녀와 결혼한다....... feat 어바웃 타임)가 여섯 살이던 해(또 여섯 살이다....)였다. 초원에서 시간여행을 하던 헨리를 만났다. 그리고 스무살이 되던 해 그를 다시 만난다. 이때 만난 헨리는 클레어를 몰랐다. 결혼 후에도 순탄치 않다. 헨리는 있다가도 없었고 어느샌가 나타났다. 나타난 그는 클레어가 알던 헨리이기도 하고 모르는 헨리이기도 했다. 늘 다른 헨리가 나타났고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클레어는 어떻게 헨리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것일까.


시간여행자들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 영화 <어바웃 타임>
내가 결혼하는 너는 언제의 너일까 |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

 

 어떤 찰나는 인생을 압도한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어떤 찰나, 시간은 인생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계는 기억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기억, 어떤 찰나의 특별함은 인생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결혼을 하든, 혹은 떠나 있든 상대를 목적한 문장의 서술어를 '사랑한다'에서 '사랑했다'로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너를 만난 후로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너를 만나 것은 나를 바꾸어놓는 '사건'이다. 이런 순간들 때문에 노벨 문학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은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사랑은 통속적인 로맨틱 소설의 사탕발림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교통사고 같은 것이다.”


 오르한 파묵은 찰나의 사로잡힘 때문에 한 여자를 위해 박물관을 세우기까지 하는 남자를 다룬 소설을 출간했다. 그 후에 인터뷰에서 사랑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모든 사랑이 이럴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것만이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때는, 누군가와는 우리가 보낸 순간들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너와 내가 보낸 찰나들, 그것이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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