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롤>을 보고
*영화 내용이 약간 들어가 있습니다.
영화 <캐롤>은 캐롤(케이트 블란쳇)과 테레즈(루니 마라)의 멜로드라마이다.
1.
캐롤은 부유한 남편과 이혼소송 중이고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남편은 캐롤을 사랑한다며 붙잡고 있다. 테레즈는 도심에 혼자 살고 어리다, 겨우 성인이 되었을 거다. 백화점에서 장난감을 팔다, 캐롤을 만난다.
2.
멜로드라마라는 장르가 없었다면, 이 영화의 장르는 '시선'이다. 계속 둘의 시선을 따라가거나 시선을 목격하면서 영화는 진행된다. 백화점에서 처음 서로를 마주 볼 때 서로에게 이미 사로잡힌다. 그 후로 이름을 물으며 관계를 시작한다. 그때 캐롤은 테레즈를 보며 "하늘에서 떨어진"(flung out of space)라는 표현을 써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랑스러운 어떤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테레즈가 캐롤이 사준 카메라를 통해 캐롤을 응시하고 담아내는 순간들. 여행 중에 둘이 동침할 때 캐롤이 테레즈에게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움"(정확하진 않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마지막 장면은 “시선”이라는 장르의 결정체다. 좌우로 시선을 움직이던 캐롤의 시선이 테레즈와 딱 마주하는 장면(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은 아름답다. 눈으로 하는 진한 키스.
이 영화는 결국 시선을 둘 곳을 잃은 캐롤과,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테레즈가 서로에게 시선의 자리를 선물하는 이야기이다.
3.
매번 동성의 사랑을 다룬 영화가 나오면 몇 가지 평들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사랑하고 보니 동성이었다. 두 번째는 동성애도 다른 사랑과 다르지 않다. 이런 두 가지 방식이 난 이 두 가지 평 모두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묘하게 동성애를 소외시키고, 고유의 서사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안전한 거리로 관객들과 영화를 떨어뜨려놓고 편하게 사랑의 보편적인 아포리즘들을 새로운 형태로 써내려 가는 평들이 등장한다.
이성애자인 사람들이 동성애를 다룬 영화를 볼 때 자신의 이성애적인 경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불편한 대목은 두 가지 방식으로 충분하다는 태도이다. 내가 아는 이성애 경험으로 직조된 지식과 감정으로 다 안다는 것처럼 써내려가는 태도 말이다.
결국 이런 태도와 글은 영화 자체에서 좀 더 멀어지게 한다. 이 영화가 캐롤과 테레즈의 사랑 이야기고 언제나 “예스”라고 말할 줄 몰랐던 테레즈가 “노”라고 말할 수 있게 되고 그 후에도 캐롤을 선택하는 이야기이며, 안락한 가정과 사랑하는 딸을 포기하고서라도 자신을 지키고, 테레즈를 선택하는 캐롤의 이야기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사랑은 둘 다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 보편적인 것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여성들의 로맨스임을 잊게 한다. 예를 들면 주인공의 동성애가 주위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주인공은 어떻게 자각하게 되는지만 집중하게 한다.
머뭇거리고, 여백을 남기는 글이 늘 좋은 글은 아니겠지만, 이런 영화에 대해서는 좀 그래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