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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Apr 08. 2016

이게 다 봄 때문이다

영화 <4월 이야기> <초속5센티미터> <하나와 앨리스>

봄이 왔다. 이 계절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도래를 알린다. 늘 지나던 길이 노란색으로 물들다, 분홍색과 흰색 빛으로 터진다. 여름이 봄꽃들이 지면서 시작되고, 가을이 서서히 잎을 물들이며 도착하고 겨울이 차가운 바람으로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것에 비해 봄의 시작은 극적이며 단호하다. 벚꽃이 폈는데, 봄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봄을 탄다. 봄의 리듬에 몸을 맡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운점퍼는 이미 까마득하고, 캐시미어와 모로 된 코트는 세탁소로 향한다. 해는 길어지고, 밤이 늦게 찾아오며 낮과 밤 사이의 어스름도 길다. 봄날의 우리는 가벼워지며 햇빛을 더 머금는다.

봄이 왔다. | 영화 <하나와 앨리스>

우리는 경쾌한 흐름에 몸을 흔들다, 이따금 흐물 해진다. 개나리와 벚꽃 사이에 약해지다 벚꽃에 흐물 해지고 만다. 봄은 우리를 감상적으로 만든다. 그 감상에 빠져 얼른 빠져나오지 못하면 흐물해지다 무너지기도 하는 참사가 벌어진다.


감상은 과도한 의미 부여다. 벚꽃이 슬프다거나 봄날의 햇빛이 아린다면, 그건 벚꽃이나 봄볕의 특성 때문이 아니라 나의 어떠함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침전해 있던 감정들과 기억들이 풍경을 핑계로 말로, 글로 표현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쌓인 것은 무어인가. 왜 매봄, 툭 튀어나오고 우리는 또 그것에 잠기나.


우선 우리는 이렇게 튀어나오는 기억이 매년 같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봄꽃을 보다,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면, 어떤 감정이 마음에 어느샌가 차있다면 떠올려보자. 그것들은 생경한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매번 비슷한 감정을 마주하고, 익숙한 기억을 떠올린다.


상태 의존 학습(State-dependent Learning)
 무언가를 학습할 때의 기분과 떠올릴 때의 기분이 비슷할 때 기억 회상이 잘된다. 이런 현상을 '상태 의존 학습'이라고 한다.
장 의존 학습'(Field-dependent learning)
 내부 심리, 생리에 달려 있는 상태 의존 학습과 달리 어떤 장소에 가면 기억이 잘 떠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가령 공부한 데서 시험을 보면 기억이 잘 나고, 애인과 데이트하던 곳에 가면 떠오른다.

상태 의존 학습이라는 용어가 있다. 경험했을 때의 기분이나 심리가, 떠올릴 때와 비슷하다면 회상이 용이한 현상을 뜻한다. 그렇다. 이시절에 당신이 지나간 사랑이나, 실패한 짝사랑을 떠올린다면 그것은 지금 당신이 느끼는 기분이 그것과 비슷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외로운 이보다 기온을 더 따뜻하게 느낀다. 그 온기와 봄볕이 조응하기 때문에 우리는 회상한다. 우리의 따뜻했던 시절을.


["외로우면 추위를 더 탄다" - 사이언스 타임스 http://goo.gl/XVrR75 ]


거기에 '장 의존 학습'까지 더해지면 우리는 완전히 무너진다. 이 용어는 비슷한 장소에서 있었던 기억을 더 잘 떠올린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 좋은 계절에 연인과 걷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그 연인과 지금 걷지 못한다면 더 절실히 떠오를 것이다. 그리운 그 시절, 그리고 그 시절의 나와 함께.



이런 과정들은 봄마다  반복되고, 벚꽃과 봄 햇살에 우리가 회상했던 기억이 연결된다. 이제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 이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4월 이야기>와 <초속 5센티미터>를 보면서 공감한다. 이 두 영화의 주인공들 우리처럼 봄날의 기억은 쉽게 떨쳐낼 수 없음을 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별도리가 없다. 감상적이 되어버린 자신이 싫더라고 그 모습을 견딜 수밖에. 아니면, 그 기억들 조차 떠올리지 못하게 바쁘게 살거나. 그래도 견디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해 아직까지 타지 않았다면, 그러지 말자. 버티다 크게 무너지지 말자. 봄은 타자. 일 년에 한번뿐인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자.




지나가는 봄이 아쉽다면, 지나간 봄 영화들을 보자.


과거의 설익은 내 사랑이 떠오른다면 <4월 이야기>

아직은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립다면 <하나와 앨리스>

아직도 봄의 뒷맛이 씁쓸하다면 <초속 5센티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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