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Trouble with Curve>
처음 야구장에 갔을 때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대학생이 되어서였을 거다. 아버지나 어머니 둘 다 야구팬이 아니었다. 대학교 때는 주로 동아리 사람들과 야구장을 찾았다. 대학생에게 할인권이 주어졌고, 2500원인가 5천 원으로 볼 수 있었다. 작년까지 라이온즈의 홈구장이었던 대구구장은 그때는 더 낙후되어있었다. 더럽고 불편하고 작았다. 허름한 만큼, 부담 없었고 사람도 적당히 없어서 좋았다. 양준혁의 현역 시절을 볼 수 있었고, 오승환의 전성기를 보았다. SK가 우승하던 시절이었고, 삼성은 3위나 4위를 했다.
졸업 후에는 근거지를 서울로 옮겼다. 그해에 포스트시즌에서 삼성과 두산이 붙었다. 그중 한 경기를 회식하던 호프 집 티브이에서 중계해주고 있었다. 몇몇이 바깥으로 두산의 플레이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고, 삼성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부분이 두산 쪽에서 보고 있었다. 난 이때 처음으로 서울에 있구나, 고향에서 먼 곳에 와있구나를 느꼈다. 그날은 삼성이 이겼다. 그 후로 잠실 구장에는 대여섯 번 갔다. 그중에서 한두 번을 빼곤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였다. 3루 쪽에 앉아서 대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라이온즈를 봤다. 서울로 올라온 2010년에는, 잠실에서 대학교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야구를 본 것이 가장 좋은 기억이었다. 그리고 2010년 이후로 삼성은 거의 우승을 했다. 나에게 이상한 지적질들을 하던 서울 사람들을, 야구 이야기를 꺼내 침묵시켰다.
난 야구를 좋아한다. 그런데 야구장에 갈 때마다 '야구를 좋아한다'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같이 가는 사람과 취향이 갈리는 경우다. 야구장의 좌석은 두 가지로 나뉜다. 조용한 쪽과 시끄러운 쪽.(홈 쪽과 원정 쪽 좌석으로 나뉘기도 하지만) 난 주로 조용한 쪽을 선호하는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시끄러운 쪽을 좋아했다.
"야구 좋아해?"
"나 엄청 좋아하지."
"야구장 갈래?"
야구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하며 좋아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방식이 이토록 다른 것을, 표를 예매할 때야 알게 된다.
야구 영화가 꽤있지만, 두 가지로 나뉜다. 조용한 쪽과 시끄러운 쪽. 시끄러운 쪽은 주로 선수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실패자였다가 역경을 딛고 승리하거나 승리자였다가 역경을 딛고 재기한다. 조용한 쪽은 스카우터나 감독이 주인공이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 고민하고 야구 경기를 보고 준비한다. 난 야구 영화도 조용한 쪽을 선호한다.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도 조용한 쪽이다.
거스 로벨(클린트 이스트우드)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스카우터이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고 옥석을 가려낸다. 수십 년 동안 최고였고, 그가 발굴해낸 프랜차이즈 스타는 셀 수 없이 많다. 거스와 그의 딸 미키(에이미 아담스)는 서먹한 관계다. 서로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고 살아간다. 대화는 매번 어긋나고, 둘 사이의 거리는 여전하다. 어느 날 그의 눈에는 이상이 생기고, 데이터와 통계로 이루어진 세이버 매트릭스를 활용하는 방식을 활용하는 이들에게는 구닥다리 취급을 당한다. 계약기간 3개월을 남기고 그는 젠트리라는 선수를 보기 위해 스카우트 여행을 떠난다. 미키는 거스의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피트의 부탁으로 거스의 여행에 동행한다.
이 영화는 서먹한 가족 원들이 특별한 이벤트를 계기로 화해하고 진정한 가족이 된다는 전형적인 플롯을 가지고 있다. 거스는 살갑지 않은 아버지이고, 딸은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좋았다. 외부에서 어떻게 보든 당사자들에게 가족은 전형적인 것이니까.
미키는 이 여행 동안 거스의 눈이 되어준다. 같이 나란히 앉아서,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스 대신에 미키는 타자의 스윙과 투수가 던진 구질을 확인해준다. 타자의 하체 움직임과 스윙, 구질에 대해서 설명해주던 아버지가 이제 딸에게 듣는다. 공격과 수비를 바꾸듯. 이런 역전을 통해서 서로는 더 가까워진다. 미키가 거스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인 화해가 이루어지지만, 이런 관계의 역전 없이 미키는 거스가 왜 미키를 떠났었는지에 대한 고백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난 이런 역전은 늘 좋아한다.
이동진 평론가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부실한 극본에 아까웠다고 평했다. 플롯이 너무 뻔하고 전형적이어서 그렇게 썼을 것이다.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나름 그것으로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야구에서는 9회 말 2 아웃의 끝내기 역전타 같은, 너무나 전형적으로 동화 같은 일들도 곧잘 벌어지니까. 그것이 야구니까.
어쩌면 극본이 아니라 야구가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야구가 문제다.
프로야구 시즌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