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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Sep 23. 2016

우리가 기적을 만들 때 필요한 것

영화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

지난 21일 브런치의 초대로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 시사회에 다녀왔다.


영화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는 9월 28일에 개봉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아 기장 설리를 연기했다. 비행기가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엔진 양쪽을 잃고 뉴욕 허드슨 강 위에 불시착했으나 모두가 생존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전작 <아메리칸 스나이퍼>에 이어서 연이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연출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실화를 극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이다. 사실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실화를 극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야기가 인상적인 것과 좋은 서사는 다른 이야기다.


자신의 이야기만 그대로 옮겨도 좋은 소설, 드라마 , 영화가 되리라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정작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스스로 도취되어, 말하는 사람은 흥분해있지만 별달리 예외적이지도 인상적이지도 않은 이야기일 경우. 다른 한 가지는 너무나 예외적이고 인상적인 이야기지만 그래서 좋은 서사로 만들어내기에는 무리가 있는 이야기. 전자는 별다른 가치가 없으니 무시하면 되는데 후자는 까다롭다.

너무나 극적인 이야기는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힘들다. 듣거나 보는 사람들로부터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가 너무나 강하고 인상적이다 보면, 이야기를 겨우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과잉이 된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감독과 작가는 너무나 인상적인 이야기는 피해야 한다. 이걸 모두들 알지만 예외적이고 인상적인 이야기의 마력은 엄청나서 감독들은 손을 대고 만다. 그리고 실패한다. 그러나 몇  뛰어난 감독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도  대부분 성공해낸다.


예외적이고 인상적인 가끔 기적적이라고도 불리는 이야기를 가지고 어떻게 성공해내는가. 단 하나의 방법밖에 없다. 건조한 톤과 치밀한 인물, 상황 묘사를 통해서 이야기를 그저 기적이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 그뿐이다. 이걸 알면 할 수 있느냐 쉽지 않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실패한 적이 있으니까. (아메리칸 스나이퍼라고.....)

다시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으로 돌아가 보자. 오픈 시퀀스를 보면서 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얼마나 뛰어난 이야기꾼인지 예술인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강 위에 착수하고도 살아남은 케이스는 전무한데 155명의 탑승자가 전원 생환한 이 기적(같은 이야기)을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첫 장면은 설리가 모는 뉴욕의 비행기가 날다가 건물에 부딪히는 장면이다. 이것은 설리가 허드슨 강에 착수한 뒤 메리어트 시티 호텔(호텔은 죄다 메리어트만 나온다. 흐어...)에서 머물면서 추락할 때를 생각하며 떠올리는 장면이다. 이 위대한 감독은 이 영화를 그저 크리스마스 영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뉴요커 혹은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 불안(911 테러의 기억)을 끌어온다.

 또 이 영화의 이야기의 중심에 설리가 기적을 이루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허드슨 강에 착수하는 결정이 정당했는지를 따지는 FAA(미항공 조사국)의 조사와 그 발표 과정을 둔다. 기적 이후이들이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성실히 치밀하게 따져가는 것이 중심 이야기이다. 설리 자신도 그것이 정당했는지 끊임없이 묻고 또 복기한다. 영화도 이런 방식으로 그 극적인 사건을 반추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 성실한 기장과 성실한 조사국,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성실한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이 기적이 사람들의 성실함 덕분임을 보게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등장인물 모두 공정하게 다룬다. 이 공정하게 다룬다는 의미는 편애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감독은 그 누구도 무엇(예를 들어 극의 긴장이나 감동)을 위해서 희생시키지 않는다. 일부러 나쁜 역할을 맡기지도 않고 악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일부러 성기게 혹은 단순하게 묘사해서 사람들이 편견에 기대서 생각하도록 의도하지도 않는다. 쉽게 가지 않고 최선을 다해 캐릭터와 상황을 구성하는 이 성실함이 이 이야기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영화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국뽕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왜 감동을 받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성실함 때문이었다. 이 정직하고 치밀한 연출이 그리고 있는 이야기가 실화였다는 사실이 인식될 때마다 이 이야기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후반의 대사 몇과 마지막 영상은 과잉이지 않았나 싶다. )


성실한 사람들이 이루어낸 성취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스포트라이트>와 <아르고>와도 어딘가 닿아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가 겪은 일들을 생각했다. 성실함의 반대는 안일함이다. 성실함이 쌓이면 기적이 되지만, 안일함이 쌓이면 반드시 비극이 된다. 배가 넘어가고 사람들이 죽고 그들의 부모가 광장에서 말라간다. 활성단층임을 알아도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이 땅에서 가장 긴 강이 초록색으로 변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생각 없는 '괜찮다.' '괜찮다.'만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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