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재심>
영화 <재심>을 보고 왔다. 이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을 기반으로 한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현우(강하늘 배우)는 다방에서 배달을 하거나 카운터를 보던 청소년이었다.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람을 피하려 넘어진다. 현우(강하늘 배우)가 넘어진 곳은 오거리이고, 그 오거리 한편에 택시기사가 차 안에서 죽어있다. 경찰들이 몰려오고, 현우는 목격자로 진술을 하다 살인범으로 몰린다. 15년 형을 받고 수감된다.
준영(정우 배우)은 변호사다. 지방대 공대 중퇴에 빽도 없지만 실력은 괜찮은 변호사다. 돈이 가장 중요하다. 한방을 노리다가 소송에서 패배한 뒤에 일자리를 찾아 전전한다. 그러다 현우에게 청구된 1억이 넘는 배상금에 대한 상담을 해주게 된다. 그리고 현우(강하늘 배우)의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해서 배상금 청구를 막으려 한다. 현우(정우 배우)의 목적은 돈과 이 소송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화제성과 이미지다. 준영은 현우를 설득해서 재심을 신청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해 나간다.(앞으로 두 역을 언급할 때는 배우 이름을 쓰겠습니다.)
강하늘의 연기가 좋았다. 10년이 넘게 감옥에 수감되어서 억울해하다, 또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 상처받은 사람의 내면을 잘 보여줬다. 영화에는 폭력 장면 몇이 있는데, 걔 중에는 불필요해 보이는 장면들도 꽤 있다. 그냥 캐릭터를 고생시키거나 불행을 안기기 위해 있는 폭력 장면은 불필요하다. 이건 게으름이다. 캐릭터가 겪어야 하거나 겼을 수밖에 없는 불행 중에 더 정확하고 적확한 것이 있는데 감독이나 각본가의(이영화는 감독과 각본이 같지만) 게으름으로 그냥 폭력으로 퉁치는 건 게으름이다. 이 와중에도 몇 장면은 강하늘의 연기가 어느 정도 개연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겨우 그 장면들을 구원해낸다. 그럼에도 전부를 구해내진 못했지만 일부가 그럴듯해 보이거나 봐줄만했던 건 전적으로 강하늘의 연기 덕분이다. 전형적이고 기술적인 연기만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강하늘이 보여준 연기는 현우가 겪는 폭력이었고 현우가 실행하는 폭력이었다. 이것이 이 영화의 처음이자 마지막 미덕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했는데 극에 핍진함이 없다. 다시 말해 사실적이다 느끼게 만들지 못한다. 이것이 초현실주의나 몽환적인 극이 아님에도 그렇다.
정우가 이동휘의 소개로 임시로 일하게 된 로펌의 광경은 진짜 이상하다. 정우는 '지잡대 공대 중퇴'의 변호사다. 이런 그를 이동휘가 소개한다고 데려오는 것도 살짝 갸우뚱하게 만드는데, 정우를 처음 본 변호사들이 그가 떠드는 이야기를 선배라고 경청하고 있다. 그럴 시간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정우가 뭐라고, 선배라는 게 뭐 중요한 바닥이라곤 하지만 저렇게 불필요할 정도로 비위를 맞추고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정우는 자신을 파트너 변호사가 될 수 있냐고 계속 떠들도 다니는데, 지위도 사무실도 돈도 잃어서 가족은 행방을 알 수 없고 자신은 직장도 없는 변호사가 로펌의 수익을 나누는 파트너 변호사 자리를 구한다? 이동휘의 로펌에서 받아주는 것도 이상한데 이건 뭐 판타지 소설인가 싶은 대사였다. 그리고 검사의 복장도 정말 이해가 안 갔다. 화려하고, 비싼 양복인데. 사소하지만 이것도 핍진성을 날려버렸다.
핍진성을 포기하고 극을 뭔가 판타지나 따뜻한 동화로 만들고 싶어 했다면 좀 더 입체적이었어야 했다. 핍진성을 포기하고서 선택한 것이 이렇게 전형적인 캐릭터와 사건, 상황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
대사와 사건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자. 영화를 보면서 '다음에 이런 대사 나오면 구린데.' '다음에 이런 사건 있음 구린데.' 하며 떠올렸는데 그게 여지없이 나와서 허탈했다. 나는 이 영화도 처음 보고,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한 것도 영화를 보면서였다. 이런 나도 떠올릴 수 있고 곧장 구리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걸 감독이 넣어놨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관객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대중적으로 쓴다고 그렇게 한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거 구리다.
캐릭터에 대해서도 그렇다. 정우와 이동휘가 대립되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정우와 이동휘의 입장과 처지가 바뀌는 걸 보여준다. 근데 그러려면 왜 변했는가에 대한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이동휘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했고 정우에 대해서는 설득력 없는 설명이었다. 이 영화의 모든 캐릭터가 납작한데, 여성 캐릭터는 화석 같았다. 남성 캐릭터가 전형적이어서 지루했지만 움직이고 말은 하는 존재로 느껴졌다면 여성 캐릭터는 이 극에 나오는 오토바이나 택시, 칼처럼 살아있는 존재로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성 캐릭터의 분노와 남성 캐릭터의 힘든 처지를 위해서 소비되기만 하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이 영화의 여성 캐릭터 나오는 장면을 잘라서 주말드라마에 넣어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아. 중요한 걸 빠져먹었구나 '10년 전'의 주말드라마에.
중요한 일은 두 번 살펴야 한다. 누군가를 살인범으로 지목하고 판결을 내릴 때 증인들을 믿을 만 한지, 증거는 깨끗한지, 법적인 절차에 하자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 때도 그러해야 한다. 이야기는 탄탄한지, 캐릭터는 생생한지, 연출은 적합한지, 투자자의 투자금이 아깝지 않은지, 관객의 시간을 뺐고 있지는 않은지. 중요한 일은 두 번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