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택트> 어라이벌 Arrival
* 아래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이 영화에서의 스포일러는 다른 영화에서의 스포일러와 다르게 작동하겠지만, 일단 경고를 해둡니다.
영화 <컨택트>가 개봉한 지 몇 주가 흘렀다. 이 영화의 원제는 Arrival이다. 한국 제목은 이와 상관없이 지어졌지만, 모두들 어라이벌이라고 발음해서 이 영화를 지칭한다. 이 영화는 드니 뵐뇌브가 감독을 했고 에이미 아담스가 주연을 맡았다. 원작은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라는 단편 소설이다.
원작과 영화는 기본적인 이야기 구성은 같다. 언어학자인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아담스)가 갑작스럽게 방문한 외계인들의 언어를 번역하고 또 그들과 소통하면서 겪는 일이다.
난 테드 창의 원작의 팬이었다. 그래서 영화화가 결정되고 또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기뻤다. 드니 뵐뇌브가 연출한다고 했을 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 어라이벌이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르고, 영화의 대본이 공개되었을 때 읽었다. 영화관에 들어가서 앉기 전까지 난 이미 두 번 이 세계의 끝을 봤다. 그래서 에이미 아담스가 내레이션을 하는 첫 부분에서부터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교차 편집으로 극을 이끌어 간다. 에이미 아담스는 햅타포드라는 외계인의 문자를 해독하고 또 소통하면서 그들의 언어와 사고를 익히게 된다. 햄타포드의 문자는 소리와 관련이 없는 표의문자이고, 또 시제가 없다. 그들의 언어를 익혀가던 그녀는 햅타포드처럼 모든 시간을 동시에 보게 된다. 그녀는 언뜻언뜻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과 함께 하는 시간의 편린을 본다. 햅타포드의 언어에 익숙해져 가면서 미래의 조각도 명확해진다. 그리고 딸이 태어날 것과 그리고 그 딸이 불치의 병으로 죽을 것임을 알게 된다.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가 돋보였다.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를 오가는(무엇을 기준으로 하냐에 따라 명칭은 달라지겠다.) 화면 속의 에이미 아담스는 딱 그 시점의 에이미 아담스처럼 느껴졌다. 아직 햄타포드어를 모를 때의 에이미 아담스와, 모든 것을 알고 딸을 바라보는 미래의 에이미 아담스의 눈빛과 연기는 딱 그 시절의 그녀였다. 그 시점의 지식과 그 시점의 감정들이었다. 난 그녀의 연기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 영화의 화면과 음악도 엄청 뛰어났다. 화면은 직사각형의 조형을 이용해서 이미지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이 영화의 음악에 관한 설명은 내가 하는 것보다 링크를 참고하는 게 좋을 것같다. http://v.media.daum.net/v/20170213170511504)에이미 아담스의 거실 창은 서로 크기와 가로세로 비가 다른 직사각형의 창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창들을 통해서 창 밖의 호수와 창 밖의 누군가를 비춰준다. 햅타포드가 타고 온 우주선의 입구도 역시 직사각형이고 햅타포드는 새하얀 직사각형의 창(?) 뒤편에 서 있다. 그 외에도 직사각형의 이미지는 계속해서 나오는데, 이 직사각형들은 건너편의 시간을 비추는 창이거나 어쩌면 시간의 맞물림을 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광활한 녹지 위에 세로로 서 있는 햅타포드의 우주선 쉘을 비출 때 화면은 쉘은 일부만 차지하고 있고 그 주위를 둘러싼 광활한 녹지와 그 옆으로 서있는 산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피사체 주위에 여백을 많이 두는 방식의 화면은 계속 이어진다. 햅타포드와 대화를 하기 위해 쉘로 들어가는 대원들을 비춰줄 때도 그들을 오른쪽 구석에 위치시키고 그들이 서 있는 쉘의 대부분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가 스케치북으로 햅타포드를 향해 서있을 때 에이미 아담스는 화면에서 작은 일부만 차지하게 하고 햄타포드가 서 있는 하얀 창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한다. 이 여백은 이 이야기가 현재 눈에 보이는 피사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에 관한 이야기라고, 또 피사체들이 마주하는 것들을 피사체의 의지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화면의 특징 중 하나는 피사체의 뒷모습을 찍은 모습이 많다는 것이다. 에이미 아담스가 헴타포드를 볼 때 에이미 아담스의 시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헴타포드를 보는 에이미 아담스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런 장면들은 계속해서 나오는데, 이로 하여금 우리를 관찰자로 만든다. 그리고 같은 시간대에서 피사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대에 있는 우리가 이 영화의 인물들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햅타포드어가, 너무 사람에게 친숙한 언어로 그려진 게 아니냐라는 비판을 본 적이 있다. 동의가 안된다. 이들은 그저 사람을 본의 아니게 만나게 된 것이 아니라 12개의 함선을 끌고 지구에 도착한 것이다. 이들이 미래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본다고 생각했을 때, 그리고 지구에 온 목적을 생각했을 때 사람들이 익힐 수 있는 문자를 들고 왔을 것이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에이미 아담스가 이해하고 익힐 수 있는 문자를 언어를 들고 와야 한다. 그들의 목적은 자신들의 언어를 인류에게 가르쳐 주어 3천 년 뒤에 있을 자신들의 위기에 인류의 도움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를 보는 햄타포드가 에이미 아담스가 이해할 것과 하지 못할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너무 인류의 언어와 흡사한 것 아니냐라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 조금 과장을 해보자면 12척을 이끌고 햅타포드가 온 것은 오로지 뱅크스 박사(에이미 아담스)를 만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마주하는 사건과 화면의 의미가 미래와 과거 현재의 무게로 느껴졌다. 무거웠다. 이런 관람 경험은 헴타포드와 소통하면서, 미래를 이미 알고 보게 된 에이미 아담스가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과 닮았을 것이다. 미래를 알면서도 나아가는 것. 미래와 과거와 현재를 더한 무게의 시간을 살아가는 일. 미래에 도래할 죽음과 아픔을 알면서도 기꺼이 선택하고 그 선택에 잠기는 일.
어떤 일은 끝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고, 어떤 일은 끝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이미 내가 미래의 너를 사랑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