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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Apr 05. 2017

내가 주도한다

영화 <미스 슬로운>


나는 예감했다. <미스 슬로운>을 시사회에 초대받아 포스터를 봤을 때. 그리고 시놉시스와 예고편을 보면서 확신했다. 이 영화는 재미있다. 이 확신은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영화 <미스 슬로운>은 대략 이런 이야기다. 슬로운은 최고의 로비 회사에서 100퍼센트 승률을 자랑하는 로비스트다. 잘 나가던 그에게 상사는 총기 규제 법안을 떨어트리는 로비를 맡아달라고 부탁하다. 그녀는 거절하고 총기 규제 법안을 지지하는 로비에 합류하게 된다. 총기 규제 법안을 반대하는 쪽에 비해 찬성하는 쪽은 상대에 비해 턱없이 작은 적은 예산과 거물급 의원들, 그리고 슬로운이 있었던 로비 회사와 싸워야 한다.


이 영화의 미덕은 재미다. 일단 재미있다. 이 재미는 대중적이면서도 치밀한 플롯에 있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플롯을 쓰면서도 플롯들을 유기적으로 또 매끈하게 연결한다. 슬로운이 청문회를 준비하는 장면부터 역으로 돌악가서 슬로운과 그 팀이 어떻게 앞서가는지 혹은 어떻게 위기를 맞는지를 서로 연결해서 보여준다. 불리하다고 느끼고 있는 순간, 슬로운은 그것을 승리를 위한 단계로 전환한다. 자신의 팀원을 파티 장에 투입하는데 결국 상대 회사에 들키지만 그 팀원으로 시선을 돌려놓고 이미 준비한 다른 방법으로 성공시키는 식이다. 그래서 계속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두 번째 미덕은 슬로운이다. 슬로운은 한국 영화에선 본 적이 없는 캐릭터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다. 모든 지시를 내리고 그 지시를 책임지고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조아리지 않으며 그 누구의 조력자가 되지도 않는다. 가장 많은 대사를 하고 가장 많은 행동을 보여준다. 주연이면 당연하지 않겠냐 여기겠지만, 여성인 배우가 혼자 이렇게까지 극 전체를 가득 채우는 영화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체적인 여성 인물이 나오는 영화도 있고 그녀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영화도 있지만 이렇게 모두를 휘두르고 지배하는 영화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극의 긴장감이나 약점이 생기느냐. 아니다. 슬로운을 연기한 제시카 차스테인과 시나리오는 이런 슬로운의 비중을 관객들에게 납득시킨다. 실제로 슬로운이 직장 동료라면 함께하고 싶지 않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멋있다.


슬로운에게 사람들은 계속 묻는다. 총기 사고에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이 있나고. 슬로운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총기 규제 법안을 지지하는 거라고 한다. 이건 두 가지 부분에서 좋은 장면이었다. 여성은 감정적인 부분만이 행동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집어 줬다는 면에서 그랬고, 그리고 특히나 어떤 사안에 대해서 스토리 텔링과 감정적인 호소만이 서로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면을 짚어줬기 때문이었다.


대중적으로 캠페인을 해야 하는 경우 요즘은 스토리 텔링 싸움이 된다. 어느 쪽이 더 구구절절한가. 구구절절함을 가지고 경쟁해야 한다면, 누가 더 불쌍한가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은 폭력에서도 일어나는데 요즘은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그저 둘 사이의 합의나 해결로 끝나는 게 아니라 대중을 향해서 억울함을 행하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기능에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꽤 많은 폭력은 쌍방에 의한 것이고 피해자로 자처한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한 사람에게 가해를 가해한 것이 드러나 서로의 피해가 뒤 섞이는 경우, 누가 더 구구절절한가로 결정되기 한다. 이런 와중에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쪽은 2차 가해자로 지목되기도 하고, 누구를 편드는 사람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잘못된 정보는 수정되지 않고 그저 잦아든다. 그래서, 판단과 행동은 이성적이어야 한다. 피해자 중심주의 즉, 피해자의 말을 정당한 발화와 신뢰할 만한 말로 받아들이는 원칙을 지킨다면 판단은 나쁜 것이 아니고 진실이 무엇이냐 묻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시 미스 슬로운으로 돌아와 요약한다면, 이 영화는 초반에는 긴장감을 만들어주고 중간에는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 여러 재미를 관객에게 돌려주고 마지막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보세요. 어서 보세요. 곧 내려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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