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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Apr 27. 2017

사랑의 출신지

영화 < 나의 사랑, 그리스 >


오래전이었다. 버스터미널에 갔던 날이었다. 남쪽에 있는 고향에 가야 했다. 일행이 따라와 배웅했고, 예매한 표를 한참 기다려 수령했다. 그러나 타지 못했다. 표를 들고 돌아보니 그녀가 울고 있었다. 주말이었고 흐렸고 전날보다 쌀쌀맞은 날이었다. 겨울은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봄은 아직 오지 않아서 조금의 추위에도 겨울을 떠올렸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그리스를 배경으로 세 커플의 사랑 얘기를 담고 있다. 각 커플의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도 다른 이야기의 등장인물들과도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리스라는 곳에서 생기는 일이라는 점에서 연결되어있다. 이 영화의 그리스는 시리아의 난민들과 쇠락한 그리스에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온 서유럽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이곳에서 사랑이 발생한다.


시리아에서 온 파리스와 그리스인 다프네가 사랑에 빠지고 그리스의 회사를 정리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온 엘리제와 그리스인 지오르고가 사랑에 빠진다. 독일에서 온 세바스찬과 그리스인 마리아는 서로의 언어를 모른 채로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다.


그들이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들 내부에 있을까 외부에 있을까. 그들의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감독은 사랑은 주로 외부에서 온다고 답하는 것 같다.


세 개의 사랑이 중첩해서 보이는 것은 이들의 사랑은 이들의 사랑이고 동시에 그리스의 사랑일 것이다. 이런 그리스에서 만났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 그리스에서 만났기 때문에 서로에게 던진 질문들.


다른 국적과 다른 언어, 다른 세계와 다른 계급이 이들의 사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또 주된 중심에 서는 것은 어쩌면 사랑은 상대를 모르기 때문에, 상대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라고 힘주어서 얘기하는 것 같다. 사실 같은 국적, 같은 언어, 같은 세계 같은 급에 속한 이들끼리의 사랑한다 해도 서로에게 동질감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은 궁금증에서 시작해서 그 궁금증이 해소되고 그래서 내 세계가 뒤바뀌고 새로운 궁금증이 상대에게 생겨나는 일이겠다. 그러면 궁금증은 어디에서 오는가. 상대로부터 오는가. 그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서있는 그리스에서 네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왔다는 맥락에서 그리고 결코 함께하지 못한 미래에서 오는 것이다.


내가 그 시절 표를 받아 들고도 플랫폼으로 들어가지 못한 건, 나를 기다리던 그녀가 울고 있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 계절의 우리가, 그 자리에 있어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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