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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Sep 07. 2016

올해 모두가 사랑했던 영화

영화 <우리들>

 지난여름, 영화 <우리들>을 봤다. 평이 좋았다 평론가들의 평도 호평 일색이었고 주위에서 관람한 사람들도 좋은 평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들의 우정과 생활을 다룬 이 영화는 어떻게 사람들을 만족시켰을까


 사람들의 평을 살펴보면 '좋은' 이유를 '진짜' '사실' '어른들은 모르는'이라는 표현을 써서 표현해놓았다. 영화가 관객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킬 때 사실을 세밀하고 사려 깊게 보여주면서 진실을 전달하고 있는 류가 있는데 우리들이 그런 류인 거였다. 현실 세계에서의 사실과 세부사항을 이유로 감동을 까내리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감동이 현실 세계의 사실성에 기초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잘 조명받지 못하는 곳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것 때문에 감동을 받았다면 사실성은 검증받아야 한다.

 <우리들>은 편견에 기대는 방식으로 직조된 게으른 영화다. 그리고 기대고 있는 편견도 유해한 편견이고 그 편견에 기대는 방식이 미학을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기대가 컸던 만큼 올해 가장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분명 좋은 지점도 꽤 있는 영화였지만 이런 것들은 다른 분들이 많이 말씀하셨으니 나는 여기서 실망스러운 부분만 다루겠다.


우선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에서의 게으름을 따져보자.


 두 주인공이 친구들에게 당하는 따돌림이 이 영화에서 가장 주된 상황이다. 이 부분을 묘사하는 방식이 어설프다. 영화에서 이 둘을 따돌리는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대놓고 뒤에서 뒷담을 하거나 생일 초대를 일부러 다른 정보가 인쇄된 초대장을 주는 방식으로 괴롭힌다. 이러는 학생들도 실제로 있을 거다. 그러나 현실에서 따돌림의 양상은 훨씬 복잡하다.


 쉬는 시간에 대놓고 뒷담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너무 게으른 묘사 아닌가.) 으쓱한데 모여서 얘기하거나 카톡 단톡방이나 카카오스토리에서 저격글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에 따라서 직접적이고 드러나는 어설픈 괴롭힘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이버 상의 관계가 묘사되지 않는 것은 명백하게 게으른 거다.


만약에 현실에서의 양상을 영화로 구현했다면 어땠을까. 이 영화에서는  '선'에 대한 따돌림은 실체가 보였고 그래서 '선'이 그것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것도 쉬웠다. 그래서 맞설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현실에 양상이 영화에 구현되었다면 '선'은 직접적으로 맞설 수 없었을 것이다. 애들은 카카오톡이나 카카오스토리로 (이름을 명시하지 않은) 저격글과 단체 단톡방에서 왕따를 시키는 방식을 사용할 테니까. 따돌리는 아이들은 부정하면 그만이다. 이런 실체를 증명하는 것은 내부자가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두 주인공은 쉽게 맞설 수 없다. 그리고 이 상황은 더 풍성한 이야기로 이어졌을 것이다.


두 번째로 실망스러운 것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들이 부재하기 때문에 생긴 이야기로 격하시켰다는 거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심하고 관심이 없다. 그 무심함의 이유가 제시되는 것은 '선'의 어머니뿐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편견'에 의해 만들어졌고 감독이 의도적으로 두 학생들에게 무심하게 만드는데 그 방식이 게으르다.


'선생님'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피구 장면부터 살펴보자, 학생들이 피구를 하기 위해 팀을 가른다. 주장이 가위바위보를 하고 필요한 팀원들을 이긴 사람이 뽑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한 번은 할 수 있다. 학생들이 가진 편견과 교우관계를 보기 위해서. (누가 마지막에 남나, 누구를 원하고 원하지 않는가가 드러나니까) 그러나 이 교사는 피구 시간마다 매번 누군가를 상처 주는 이 방식으로 팀을 짜는 걸로 보인다. 그리고 피구를 하다 금을 밟았니 말았니 다투고 있을 때 교사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아웃 판정은 심판이 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침묵하고 심판 역할을 맡은 학생도 따로 없다. 무관심한 남자교사 클리셰의 출발점이다

( 전혀 현실적이거나 사실적이지 않다. 지적한 김에 더해보자면 요즘 누가 피구를 배구공으로 하나. 요즘 웬만하면 말랑한 스펀지 공을 쓴다.)

 초등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은 대부분 교실에 있다. 쉬는 시간에도 마찬가지고 다른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러 오는 시간(학교마다 다르지만 예를 들어 영어, 체육 등이 그렇다.)을 제외하고는 교실에서 일을 보고 생활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두 학생이 교실에서 고립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자교사를 교실에서 제거한다. 이 교사는 수업 때만 들어오고 집에 갈 때만 등장한다. 영화니까 각색을 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추구하는 미학이 '사실성'에 기초한다면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결국 '상황'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감독이 '어른들의 부재'가 아니라 두 4학년 여학생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 했다면 상황은 영화적 미학을 망치지 않는 선에서는 최대한 현실적이어야 한다.


 남자 교사로 설정한 이유도 뻔해 보인다. 남자교사는 여자교사보다 세심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으며 알지도 못하면서 입바른 얘기만 하고 있다. 이게 사실적이라고 느낀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90년대에 '국민학생'이나 '초등학생'으로 겪었던 학교생활과 비교했을 때 사실적이라 느낀 것일 거다.

 

 또 다른 어른들인 선의 '아버지'는 늘 술을 찾는 육체 노동자이고, 지아의 '할머니'는 교회에만 열심히이고 학원으로 손녀를 돌린다.  어른들의 무관심을 구축하기 위해서 캐릭터들을 너무 안일하게 만들어낸 느낌이다.


학교 묘사하고 구성하는 방식도 게으르다.

 

 두 주인공의 관계가 사실은 같은 학교 같은 반에 재학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라는 공간과 학생들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는 게으른 방식으로 연출한다. 학교를 좀 더 심층적으로 치밀하게 묘사하고 구성했어야 했다. 그들이 관계가 부침을 겪는 것은 학교에서의 관계가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이 학교를 구성하고 보여주는 방식은 게으르고 게으르다. 그렇게 해서 중심 서사가 돋보였는가. 그것도 아니다.


 방학 숙제를 말로만 내주는 교사는 없다. 그리고 방학 숙제로 매일 일기 쓰기를 내주는 경우는 없다.  동성의 학생이 짝으로 앉는 경우는 인원수가 모자라는 경우 몇 명만 그렇게 앉지 반 전체가 남자는 남자와 여자는 여자와 앉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방학식 하는 날 전학 오는 경우도 없고 전학 온 학생이 학교를 혼자 돌아다니는 경우도 없다. 방학식날 혼자 방과 후에 남아서 선생님 없이 청소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꽤 잘되는 분식집을 운영하는 선의 어머니가 다른 부모들에 비해서 약자로 그려지는 것도 이상하다. 그리고 반농담이지만 분식집 딸인 '선'이 인기 없는 건 현실성이 있는가.......


 가장 화가 났던 부분은 이것이다. 여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매번 앉아서 이야기하는 걸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얼마나 편견 가득하고 게으른 묘사 방식인가.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쉬는 시간에 뛰고 제기를 차고 던지고 놀던 여학생에게 주의를 줬고, 남학생들은 앉아서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여학생과 남학생의 놀이 방식은 차이가 거의 없다.  감독 눈에는 여학생다운 놀이가 앉아서 수다뿐인가 보지?


 난 이 영화가 '복고'  시대극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학창 시절 아주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직조한 영화. 그래서 현실과 상관없이 자신이 학생으로서 보고 느꼈던 기억으로 구성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애초에 이것이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의 학교로 설정된 영화였다면 나의 평가는 달랐겠다.


그나저나 이 영화에 대해서 '사실적' '우리가 몰랐던'이란 문구로 평을 남기면서도 그 '사실'이 뭔지 확인하지 않고 극찬한 평론가에 대해서는 실망을 금치 못하겠다. 그거 게으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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