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와 물질에 관한 이론
나는 부유한다. 학교를 향해 가는 나는, 직장을 향해 가는 나는, 확고한 길과 경로에서 부유한다. 몸은 방향을 알고 움직여 걸음을 만드나, 나는 부유한다.
꽃가루가 수면 위를 끊임없이 떠다닌다. 어떤 외부 자극없이 수면 위를 떠다닌다. 이 일은 수만년동안 있어왔지만 이 현상을 관찰하고 이름을 붙여준이는 1827년의 그가 처음 이었다. 사람들은 수면의 꽃가루를 응시하며 생명의 경이를 보고 나아가 신의 얼굴을 보고 가기도 했다. 그도 그랬다. 생명을 사랑하던 이는 액체 위를 떠도는 움직임을 우리와 다른 것으로, 경이로 남겼다.
부유의 이유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부유의 미래는 약 50년 뒤에 바뀐다. 1872년 델소라는 사람은 이 부유가 그저 경이이기만 하지 않고 이 세계에 속한 운동이라고 움직임이라고 주장한다. 액체 속에 있는 물체 표면에는 끊임없이 액체 분자가 충돌한다. 충돌은 물체의 표면이 넓은 경우 통계적으로 균등화된다. 크기가 큰 물체가 액체 속에서 평형상태에 이르면 멈춘다. 하지만 아주 작은 미소입자의 경우에는 표면이 작아 충격의 불균형이 커지고, 물체는 계속해서 또 돈다. 부유에 대한 가설이 세워졌고 후에 아인슈타인과 장 바스티스 페렝에 의해 이론화되고 증명된다. 우리는 이제, 입자가 얼마나 멀리 떠나간 뒤 방향을 바꿀지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현상을 발견한 리처드 브라운의 이름이 붙은 브라운 운동은, 이 부유는 이제 물 위의 꽃가루만이 아니라 기체에서의 부유, 확산, 분자단위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가 된다.
매일. 매시간. 어쩌면 매순간.확고한 루틴 안의 내 몸 안, 불안함은 어젯밤 수화기 너머의 연인의 말투에 붙어있다가 그이가 없는 세상에 대한 예감까지 나아간다. 부모의 늙어감에 걸려 있기도하고 또 다시 나의 고립감에 멈춰있다 이유없는 멜랑콜리에서 옅게 퍼지기도 한다. 우울이 기쁨이 그리고 애정이 부유하고 퍼진다.
이름을 불러준다고 꽃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름일 뿐이다. 이름을 부르는 이가 그저 그자리에 내가 있다고,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나의 이름을 통과해서 들어오는 건 훨씬 드문 일이다.
그 드문 일이 일어난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부유하는 것이 자신 세계에 속한 일이기도 하다고 믿고 들여다봐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러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부유의 반경이 어디까지 일지 알게되는 일도 일어 날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희박한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
그 반경이 당신의 양팔의 너비보다 작기를, 당신의 폭이 내 부유의 최대한보다 넓기를. 그래서 내 부유가 우리의 닫힌계 안의 일이되기를.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꽃가루가 떨어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