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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Mar 14. 2017

재현과 그리움


재현과 그리움

아홉 살까지의 나는 무엇이든 궁금했다. 몇 평 되지 않는 집을 뒤졌다. 서 랍을 열고 닫고 옷장을 열고 닫고 열었던 서랍을 열고 닫았다. 서랍에 무엇이 있을지 알았다. 서랍을 열면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본 광경이 펼쳐질 것을 알았다.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 열 살 전의 나는 그리움을 몰랐다.

나는 어머니의 등을 보고 그리움에 대해서 배웠다. 내가 열 살 때 아버지는 죽었다. 그와 쓰던 방 한 가운데 앉아 양말을 신던 그녀의 등에서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봤다. 아버지의 얼굴을 본 후로,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을 따라보다 그리움을 알았다. 그의 사진, 그의 정장, 그의 양말, 나의 얼굴, 나의 목소리, 나의 말투. 그리움은 대상을 보지 않고도 그려낼 수 있는사람들이 겪는 질환일 것이다. 정확히는 그 사람들이 그리움의 대상을 재현하려 겪는 갈증일 것이다.

나는 예전에 재현이 실패하는 과정이 시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언어로 재현하고, 또 그 언어로 재현된 감각들을 읽고 듣는 사람 안에서 재현 시키는 과정에서 실패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실패를 확신하고, 재현이 부서진 파편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일이시를 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움을 앓는 사람들은 대상을 목격했고 만져 본 적이 있다. 가끔, 보지 못한 것들을 그리워하고 재현하려는 사람들도 본다. 구약 성서는 고대 히브리어로 쓰였고, 나중에 헬라어로 번역되었다. 시간이 지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람어로 말했고, 신약 성서는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쓰여 진 후에는 필사자에 의해 각기 다른 판본들이 유통되었다. 몇 마디가 더 있기도 했고 몇 마디가 더 줄기도 했다. 필사하는 사람들마다, 자신들이 직접 보고 듣지 못한 예수와 제자들의 행동과 말을 원래에 가깝게 옮기기 위해 노력했다. 후대의 사람들은 수많은 판본을 보고 당시의 의미를 재현해내기 위해 주석을 달고, 해석학을 발명한다. 그들의 재현도 늘 불완전했고 그리움은 그대로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현한 것들이 실패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종말론을 믿었다. 종말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늘 불완전하고 실패할거다. 그러나 계속 해나가야 한다.

현대 우주론 가설 중 하나인 홀로그램 우주론에 따르면 우리는 허상이다. 블랙홀 너머의 것들이 블랙홀의 경계에 투사된다. 우리는 이 허상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재현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재현은 재현의 재현이다.

언제나 불완전 할 것이고 재현의 실패도 확신하지 못하는 세계일 것이다. 그래서 재현의 세계에서의 그리움은 실체를 그리워하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재현을 그리워하는 일이 된다. 이 세계에서의 그리움은 지나간 재현을 향하면서도 미래에 도래할 재현을 향한다. 그래서 이 세계의 시는 대상의 재현을 시도하는 일과 그 실패가 아름답기를 바라는 일뿐만이 아니라 재현의 재현을 그리워하는 일이다. 그래서 가장 시적인 순간들은 시를 계속 써내려가는 일이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사진을 뒤지고, 나의 얼굴을 보고, 나의 음성을 듣고, 시간이 흐름 속의 나를 계속해서 응시하는 것처럼. 내가 얼굴을 계속해서 허공에 그려보는 것처럼.



2월에 듣던 시 창작 수업 과제였다. 시적인 순간이란 주제로 산문을 써야했다. 그리고 김행숙의 글 '에로스와 아우라'에서 구조는 빌려왔다. 그 글이 훨씬 길긴하지만 흐름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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