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모두 자신의 잘못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류는 사람들에게 늘 비슷한 이유로 상처를 받았다. 존중받지 못할 때 류는 분노했다.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는 꽤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감정과 의사가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상대가 그럴 리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며 진짜 이유가 뭐냐며 자신을 납득시겨보라고 할 때의 절망감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또 이런 경우.
'네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의도를 오해한 것 같다.'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에게 이런 말을 던졌을 때 그는 상대의 인지 능력을 의심하고 잘못 작동하는 것으로 후려치고 있는 거다. 저 말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잘못한 이의 의도를 가늠할 근거도, 그때의 상황에 대한 근거도 없으면서 발화되는 저런 말들은 온전한 인격체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다.
이런 경우도 있다.
분명 잘못을 했고 자신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사과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그저 한참 시간이 지나 밝은 낯으로 인사하고 밥을 사주고 상대가 기분이 좋아질 만한 말들을 뱉는다. 잘못을 사과하고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만회하려는 이 사람은 상대를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사과해야 하는 자신이 잘못으로 상처받거나 피해를 입은 상대보다 언제나 늘 더 소중하다. 이 경우 만회하려는 행위도 상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자신을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도덕적이며 좋은 사람이기 위해서 하는 '좋은 행동'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고통은 관심이 없고 자신의 행동에만 관심이 있다. 만회하려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상대의 상처에서 눈을 떼는 행위이고 자신에게서 미안함과 긴장감이 사라지면 끝이 난다. 그래서 상대는 용서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용서를 구한 적이 없으므로) 그는 마음속에 짐을 스스로 덜고 용서받은 것처럼 군다. 이 과정에서 상대는 인격체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일들이 생기면 상처를 받고 이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상처를 회복하는 속도는 더뎌진다.
계속해서 이런 일들이 생기면 이 일들이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것일까 생각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고민을 듣고 위와 같은 행동을 한 자신은 잘못이 없고 상대가 전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늘 명백하게 저런 상황들은 상대의 잘못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이런 일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있을까 의심한다.
그러다 내가 명백히 잘못한 과거의 일들이 연이어 연상되어서 떠오른다.
그러다가 깊어져 그러다가 이어지고 나는 이어져 가는 방향을 감지한다.
더 나쁜 쪽으로 더 나쁜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