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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Aug 19. 2017

우리가 마주할 때 말하지 않는 것들

영화 <더 테이블>


영화 <더 테이블> 시사회에 다녀왔다. <더 테이블>은 <최악의 하루>의 김종관 감독의 작품이다.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더 테이블>은  같은 카페 같은 창가 테이블에 앉아 대화하는 네 짝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보여주는 영화다.


정유미가 맡은 유진은 스타 배우다. 그녀는 전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 카페가 들른다. 마스크를 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주위를 부산스레 살피면서 창가 자리에 앉는다. 전 남자 친구인 창석은 얼마 뒤에 도착해 마주 앉는다.


경진(정은채)은 민호와 마주 앉아 있다. 민호는 수개월간의 여행을 다녀왔고 둘은 그 수개월의 시간만큼 만나지 못했다.


은희(한예리)는 숙자(김혜옥)와 마주 앉아 자신의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일정을 살피고 계획을 확인한다.


운철(연우진)은 자리에 앉아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혜경(임수정)을 기다린다. 혜경과 운철은 마주 앉아 혜경의 결혼에 대해 둘의 과거에 대해 말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 한예리 배우와 김혜옥 배우가 나오는 이야기가 좋았다. 가장 따뜻한 햇살이 떨어지는 시간에 둘은 상대의 바람을 충분히 들어주고 살피면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를 한다. 자세한 내용을 적는 것은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적지 못하지만, 대화의 짜임으로 봐서도 훌륭했다. 한예리, 정은채, 정유미, 임수정 배우가 맡은 배역 중에 한예리가 연기한 배경이 가장 잘 짜인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고 그 원하는 바를 요구하면서도 눈치를 보거나 혹은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유일한 캐릭터였다. 그리고 김혜옥 배우와 한예리 배우의 배분과 대화의 방식이 균형이 잡혀 있었고 이 균형감이 두 캐릭터의 특성을 더 잘 드러내었다. 


정유미 배우와 정은채 배우, 임수정 배우가 맡은 캐릭터는 아쉬웠다. 조금 전형적이었다. 남성의 욕망이 투영된 전형이었다. 정유미 배우와 정은채 배우가 맡은 배역은 상대편이 연락을 했기 때문에, 나온 느낌이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알지 못한 채로 자신이 상대에게 호감이 있기 때문에 나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어렴풋하게 아는 바를 말하지 못하고 또 그에 따라 결정하지 못하는 캐릭터들처럼 상대가 무례한 순간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거나 자신의 의사를 끝까지 관철시키지 못한다. 특히 정은채 배우가 나온 에피소드의 남성은 너무나 폭력적이었다. 난 이것이 남성의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임수정 배우가 맡은 배역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끊임없이 우유부단하게 구는 남성을 대신해서 여성이 말해주는 판타지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경(임수정)은 끊임없이 상대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이 유혹을 완강히 거부하지 않는다. 이것은 판타지이다. 판타지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판타지는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는 것을 막는다. 그저 판타지를 소비하게 끔 만든다. 감독이 이걸 의도한 것일까.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좋았다. 김종관 식의 코미디와 김종관의 배우 취향을 화면을 좋아한다. 김종관이 늘 빛을 잘 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영화도 빛을 잘 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배우를 아름답게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플롯 없이 장소 이동 없이 대화로만 이루어진 영화에 이런 김종관의 장점은 더 크게 작용한다.

영화의 중심에 테이블과 대화를 끌고 온 것도 좋았다. 네 에피소드 모두 서로를 잘 모르는 이들끼리의 대화로 이루어져있다는 점도 좋았다.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대화는 많은 부분들이 생략되고 둘만이 공유하는 느낌들을 기반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짧은 시간에 파악하기 힘들다. 한때 연인이었지만, 혹은 예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지만 현재의 상대는 잘 모르는 이들의 대화는 긴장감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 서로가 서로를 욕망한다. 그러나 나는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나는 네가 나의 욕망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 어디까지 드러내야 상대가 원하는 바를 알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네가 나의 욕망을 받아들일까. 나는 너의 눈을 보고 입을 보고 생각하고 답하고 말한다.


네 에피소드는 결국 내가 왜 너를 불러냈는지 나는 왜 너의 부름에 응답해서 여기에 나왔는지가 드러나면서 끝이 난다. 어떤 경우는 숨기려 하지만 들키고 어떤 경우는 이유를 망설이다 말한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말해지지는 않는다. 말해진 것들로 충분히 사랑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혹은 말해진 것들로 말하지 않은 것들이 극복할 수 없을 만큼 굳건한지 확인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충분히 말했음을 우리는 안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우리는 말을 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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