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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Sep 06. 2017

20세기 여자들

영화 < 우리의 20세기 >



9월 27일 개봉 예정인 <우리의 20세기>  (원제 20th Century Women)을 지난 금요일에 봤다.

이 영화는 1979년 산타바바라에서 사는 50대 중반의 도로시아와 그녀의 10대 아들 제이미, 그리고 도로시아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차 수리공 찰리, 사진을 찍는 애비, 제이미의 단짝 친구인 줄리의 이야기이다. 도로시아는 10대 아들을 혼자서는 제대로 키우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애비, 줄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찰리에게는 비슷한 부탁을 이전에 한 것 같아 보인다.) 애비와 줄리는 자신 나름대로 제이미를 돕고 여러 일들을 겪는다.


이 영화는 아들 제이미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도로시아가 제이미와 겪는 갈등과 도로시아가 제이미를 향해 하는 걱정이 중심이 되어 애비와 줄리, 찰리의 삶이 엮여나간다. 제이미는 계속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도로시아는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고 사람들은 요청을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제이미는 분명 도움을 받는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제이미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로시아와 애비, 줄리는 자신이 돕고 있다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제이미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제이미에게 의지한다. 제이미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새롭게 바라보게 되면서 이 20세기의 여자들이 어떤 삶을, 어떤 생각을, 어떤 꿈을 꾸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제이미의 성장 서사라기보다, 20세기의 여자들이 제이미라는 거울을 보고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여성 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성장)서사가 등장하는 후반부는 너무 좋다. 그 시절의 음악과 그 시절의 생각들과 그 시절의 꿈들과 그 시절의 사람들, 여자들이 보여주는 상호작용과 그로 인한 이야기의 울림이 상당히 매끄럽게 그리고 풍성하게 그려진다. 사실 앞부분은 그 시절의 박물지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어서 좀 지루했다. 난 이것이 그저 시대가 주인공이 되어버리고 인물들은 도구로 쓰이는 영화가 아닐까 앞부분을 보면서 의심했다. 다행히 후반부에 그 걱정을 깔끔하게 날려 보내주었지만 굳이 앞부분을 그렇게 이야기를 납작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도로시 역을 맡은 아네타 베닝의 연기는 정말 훌륭하고 애비 역을 맡은 그레타 거윅도 훌륭하고, 줄리 역을 맡은 엘르 페닝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다. 그러나 제이미 역을 맡은 루카스 제이드 주먼의 연기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제이미가 뭔가를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바뀌는 것을 매우 섬세하게 연기로 보여주었다.

연출과 미술도 그 시절의, 그 인물들의 느낌을 잘 보여줘서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먼저 언급했던, 영화 초반에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납작해 보이게 이야기와 연출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등장인물들이 이 시절 뒤에 어떤 일들을 겪는지 제이미의 내레이션과 몇 가지의 스냅 장면으로 보여주는데 이 부분이 좀 아쉬웠다. 연출의 방식도 그렇지만 서사적으로 많이 아쉬웠다. 이 인물들이 이 79년의 산타바바라 후에 어떤 삶이 너무 동화 같았다. 고민 없이 짜인 서사들이 인물들에게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단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이 영화의 작은 흠일 뿐이다.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 드는 느낌은 영화 <보이후드>를 보고 나온 느낌과 비슷했다. 잔잔하게 그리고 천천히 잠기게 했다가 마지막에 무너뜨리는 느낌이 비슷했다.

좋은 영화였다.


덧붙이면 제목은 원제가 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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