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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Nov 16. 2018

단상 *


#1

글쓰기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을 보면 위태롭다. 특히나 들뜬 얼굴로 말할 때, 그가 어떤 글을 쓰는지를 떠올리게 되며, 혹은 그의 글을 알지 못할 때 그의 글에 반드시 실망하게 될 거라는 예감을 느낀다. 자신의 들뜬 얼굴을 모른 채 말하는 사람에게 좋은 글이 나올 리가 없겠지. 들뜬 얼굴을 한 사람들이 비유, 특히 은유를 좋아한다면 상태는 심각해진다. 비유가 세상을 낯설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그들의 은유는 이제는 없는 세계에 다시 익숙해지게 만든다. 


#2

비평이란 무엇일까. 비평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비평이 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비평이 작품의 가치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일이라면, 작품의 자리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일이라면 비평은 연결망 만들기일 뿐일까. 이론은 비평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비평가들이 자기 글인 양 떠들고 있지만, 사실 어떤 사람의 견해나 관점을 인용하고 있는 것뿐이면서 전혀 그 출처를 밝히지 않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그 출처를 모른다고(혹은 모르는 척한다고) 괜찮은 걸까. 그리고 비평은 작품에, 작품의 우주에 복무하는 장르일 뿐일까. 그 정도의 자리가 적당할까.


#3

소설에서 의미는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서사의 의미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소설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래서 묘사는 의미와 어떤 상관이 있는가? 그래서 미메시스는 그래서 재현은 재현의 고원들은 무엇을 만들어내는가. 서사 이론에서 의미론에 대한 연구가 적은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4

일단은 (  )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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