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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휘 Aug 05. 2018

불가능한 기도를 하는 마음

모든 죽음은 의문사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해결되지 않는 영원한 의문이다.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언제 어디에서 죽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마음속에서는 풀리지 않는다.

의문사가 늘어간다. 의문사를 품은 사람들이 주위에 늘어간다. 죽음을 일찍 겪은 이들의 삶에는 죽음이 깃든다. 죽음이 깃든 삶을 걸을 때 귓바퀴에 걸린 소리를 말소리로 착각한다. 고개를 돌리고 고개를 돌린 만큼 나는 멈추고 다시 뒤로 밀려 난다. 죽음은 무겁다. 그래서 벗어나기 힘들다.

죽음에 붙들린 사람들에게는 냄새가 난다.


즐거움. 모두들 즐거운 삶을 꿈꾼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즐거움을 더 선호하게 된 것 같다. 자기 자신을 겨우 도울 수 있을 따름인 삶을 산다. 그래서 즐거움 정도만 꿈꿀 수만 있는 삶이 된다. 냄새에 더 예민해지고 그래서 슬픈 자들은 혼자 남는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슬픈 사람들. 그들은 삶에 잠겨간다. 수면과 멀어져 간다.


그들에게 모든 기도들은 불가능한 기도겠고, 언젠가 기도를 멈춘다. 혹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기도를 한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인 돈과 장소가 주어졌으나 삶을 욕망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욕망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모든 죽음은 의문사이다. 때때로 나의 죽음도 의문사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 삶도 의문이다. 의문의 삶을 희망도 없이 걸어간다. 단단한 벽을 세우고 걸어간다. 이들의 마음을 여는 일이 가능할까. 나에게 우리는 가능한가.


불가능한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 한정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이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는 기도라든지. 죽어가는 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기도라든지. 불가능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기적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다.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남지 않았을 때도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이다.


벽을 지고 가는 걷는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기도는 가능한가. 그것은 모르겠다. 최근에 불가능한 기도를 하는 사람을 봤다. 그래서 조금 눈물이 났고, 그래서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그 꿈과 희망은 나의 것이 아니었고 그래서 부러웠다. 벽이 조금 흔들렸다. 그것으로도 기쁜 삶을 살아간다. 언젠가 나도 불가능한 일을 기도하는 순간들이 오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기대하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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