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12│2022.02.11
오늘은 마감 날. 바쁜 날이다. 평소 같으면 자리에서 간단히 김밥으로 때웠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잡힌 약속이 있었다. 오늘의 점심을 위해 어제도 야근을 했고, 오늘도 야근을 했다. 주말에도 잠깐 출근 예정이다. 이쯤이야. 여유로운 점심을 위해서라면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땡.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부장님 차에 올라탄다. 약 20분 정도 달릴 예정이다. 행주산성으로 어탕국수를 먹으러 간다. 이 어탕국수는 행주산성 맛집으로 꽤나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회사 내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나는 회사를 5년 넘게 다니면서 아직도 못 가본 것이다. 점심을 참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게 굴욕이 아닐 수 없다. 지난 팀점 때 이런 이야기가 나왔고, 부장님이 데려가 주신다고 했다. 그게 오늘이다.
도착했다. 우리는 다른 회사보다 점심시간이 30분 빠르다. 그래서 그런지 주차장이 아직 여유롭다. 식당 내부도 널널하다. 코로나 전에는 방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먹었는데, 코로나 이후 바뀌었다고 한다. 멀찍이 떨어진 입식 테이블이 나를 반긴다. 다른 회사보다 점심시간이 30분 빠른 것은 진짜 최고의 복지다.
들어가면서 어탕국수를 주문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두부가 먼저 나온다. 맛있다. 색깔로만 보고 약간 자극적인 맛을 상상했는데, 아니다. 생각보다 간이 슴슴하고 고소한 두부의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따끈따끈하니 더 맛있다.
곧이어 어탕국수가 나온다. 바글 바글 바글. 뚝배기 위로 국물이 넘쳐흐른다. 소면이 불어버리기 전에 얼른 건져두라고 한다. 안 그러면 계속 불어나는 국수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진짜였다. 나는 미처 다 못 건지고 절반을 남겨뒀는데, 이 절반의 국수가 계속 불어나서 먹어도 먹어도 계속 뚝배기 가득 찼다. 국물이 생각보다 더 맛있었다. 먹기 전에는 약간 걸쭉한 어죽이나 추어탕 같은 느낌을 생각했었는데, 비슷하지만 훨씬 맑다. 국수를 말아먹기에 적합하다. 간도 생각보다는 세지 않았다. 보통의 국, 탕류들이 지나치게 짜거나 매운 것에 비하면 깔끔한 정도였다. 여기에 제피가루를 조금 넣으면 향기 확 달라진다. 향신료를 좋아하는 나는 조금의 제피가루가 들어간 것이 더 맛있었다. 반도 안 먹었는데 면이 계속 불어나면서 벌써 배가 부르다. 왜인지 몸에 좋은 것 같아 그래도 더 먹었다. 주말에 남편과 한 번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왔다. 오늘은 바쁜 날이지만, 그래도 짜증 나거나 쫓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최고로 맛있었다거나 한 것은 사실 아니다. 하지만 아주 흡족한 점심이었다. 이 정도의 맛에, 이 정도의 가격에, 이 정도의 분위기를 한꺼번에 누리기 쉽지 않다. 빠듯한 날들에 잠시나마 쐰 콧바람도 한몫했겠다. 어찌나 흡족한지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맛있는 밥 많이 먹으려고 열심히 일하는 내게 오늘 하루는, 꽤나 보람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