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13│2022.02.12
남편이 주말 이틀간 출근을 한다. 반기마다 한 번씩 있는 일이다. 남편 팀에서 큰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22년도 상반기에는 오늘과 내일이다.
남편 없는 주말을 맞이하여 많은 계획을 세웠다. 친구들을 만나고, 집 정리도 하고, 쇼핑도 가고, 월 마감을 위해 회사에도 잠깐 출근할 예정이다. 남편이 있다고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다거나, 할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이랑 노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 그래서 남편이 있는 보통의 주말은 대부분 남편과 시간을 보낸다. 특별한 계획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편과 뒹굴거리기가 다반사다.
남편 없는 첫 주말의 일정은 친구들 만나기다. 돼지갈비를 먹기로 했다. 보광동에 있는 종점숯불갈비에서 1시에 만나기로 했다. 이후의 계획을 위해 차를 가져가야 해서 근처의 주차장을 찾는다. 한남유수지공영주차장이 여러모로 괜찮다. 가격도 그렇고, 거리도 그렇고, 주차의 쾌적성도 좋다. 집에서 주차장까지 차로 40분 정도가 걸리고, 주차장에서 고깃집까지 걸어서 12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여유롭게 11시 40분쯤 집을 나선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강변북로를 시원하게 달려야지 했는데, 웬걸. 그 시간대의 강변북로는 굉장히 막히고 미세먼지도 심하다. 바로 옆 건물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도로 대신 시원한 컬링 경기 중계를 들으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고깃집을 향해 여유롭게 걸었다. 차로는 자주 지나다녔지만, 그 길을 걸었던 것은 처음이다. 괜히 들뜨는 마음에 사진을 여러 장 찍어본다.
고깃집에 도착했다. 주말치곤 이른 시간인지 우리 밖에 없다. 돼지갈비 3인분을 시킨다. 열심히 굽는다. 늘 느끼는 거지만 양념된 고기를 제대로 구워내는 것은 너무 어렵다.
달달한 양념이 맛있다. 고기도 맛있지만 반찬으로 나온 고사리와 김치가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열심히 먹었다. 후식으로 냉면과 된장찌개까지 끝내고 식당을 나선다.
헬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마켓컬리에서 헬카페 콜드브루는 종종 시켜먹어 봤지만, 직접 방문은 처음이다. 늘 사람이 많고, 또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는 소문이 있어 가보지 못했다. 커피가 맛있는 카페에 가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다행히 자리가 있다. 만델링을 주문한다. 곧 나온다. 친구들과 밀렸던 이야기를 나눈다. 대학교 1학년 때 같은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벌써 십 년이 훌쩍 넘었다. 늘 할 이야기가 있고,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해도 항상 즐거운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 시간이 가까워온다. 헬카페는 음료 1잔 당 두 시간의 이용 시간이 정해져 있다. 다른 카페에 가볼까, 아니면 한 잔 더 시킬까 고민하다가 한 잔 더 시키기로 했다. 커피가 맛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커피로는 블렌드 아이스를 시켰다. 얼려놓은 잔에 사각 얼음과 함께 나온 커피는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다. 원두를 강하게 볶아서 쓴다고 하는데, 강배전 원두의 맛이 그대로 잘 느껴진다. 예전 일본 여행 때 자주 먹었던 커피의 맛이다. 커피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면서 이렇게 쓴다는 것이 굉장히 창피하다. 그렇지만 일기 쓰기를 계획하면서 크게 다짐했던 것은 첫째로 꾸준히 쓰기였고, 두 번째는 솔직하게 쓰기였다. 공개된 곳에 자기 검열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게는 두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냥 나를 위해 남겨놓는 나의 아주 사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의견일 뿐이다.
두 번째 시킨 커피를 다 먹고 헤어질 때쯤, 길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태원역으로 가는 친구들과 헤어져 나는 다시 한남유수지공영주차장으로 향한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네이버 지도를 켠다. 왔던 길로 돌아가는 길은 40분 정도고, 골목길 사이로 가로질러 가는 길은 22분 걸린다. 최단 거리를 택한다.
골목길 사이사이를 밝히는 가로등 불빛이 따스하게 느껴질 때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한 번 떠오른 무서운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긴장하게 만든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너무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골목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골목만큼 복잡하고 어둡다. 무서우려면 우리 집 골목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집 골목을 지나가며 한 번도 무섭다고 생각한 적 없다. 다른 것은 딱 하나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의 골목은 내가 알고 있는 길이고,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내가 처음 걷는, 안 가본 길이라는 것이다.
계속 길을 걸었다. 아까 내가 왔던 길을 만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그제야 그 길 사이에서 이런저런 풍경들이 보인다. 아름답다. 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불빛이 따스하다. 특히 그 길의 끝에서 만난 한강은, 점심의 미세먼지가 사라졌는지 유독 반짝인다.
아는 길로 차까지 오면서 생각을 한다. 아무것도 아닌데 왜 무서웠을까. 그냥 안 가본 길이었기 때문이다. 내 지금의 상황과 맞닿아있다. 작년 말부터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 퇴사를 계획했다가,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지만) 결국은 안 가본 길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의 안락함을 포기하지 못해 퇴사를 번복했다.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현실적인 상황 등을 핑계 삼아 애써 포장했다. 포기한 것은 아니라지만, 어쨌든 미룬 것은 사실이다.
조금 더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조금 더 냉정히 내 꿈과 계획에 대해서 생각한다. 진짜 내 꿈이 무엇인지, 좋아 보인다는 이유 말고 내가 그것을 이루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지. 그를 위해서 내가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만큼 그 꿈에 대해 진심이고, 그것을 위해 얼마만큼 집중할 수 있을지. 그렇게 생각해보니 정작 나는 내가 꿈꾸는 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아직까지도 많은 경우 책을 통해 정보를 얻는 나는 곧장 그 길로 서점으로 향한다. 그리고 평소 '시간 나면 읽어야지.' 하고 담아만 뒀던 20권 정도의 책을 꼼꼼히 살펴 흥미롭고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5권의 책을 산다. 집으로 돌아와 읽기 시작한다.
갖고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것을 얻는 것은 아예 새롭게 새로운 것을 얻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인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님에도, 안 가본 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서웠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