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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Feb 25. 2022

나 생각보다 집밥에 진심인걸

기록하는 2022년│Episode 25│2022.02.24

격리 겸 재택근무 1일 차다. 어제는 사실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월말이라 마감으로 제일 바쁠 때라 걱정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름 좋은 점이 있었다. 사실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다는 불안을 빼면 모든 것이 좋다. 우선 이런저런 걱정 없이 재택근무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다. 조를 짜거나 출근 준비를 염두에 둘 필요 없이 적어도 이번 주까지는 무조건 재택이다. 지난 재택근무를 통해 재택근무의 장점은 이미 넘치도록 느꼈다. 출퇴근과 준비로 시간을 뺏기지 않으니 시간을 훨씬 내 중심적으로 쓸 수 있고, 동시에 업무 효율도 몹시 높아진다.

그리고 이렇게 코로나가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 바깥에 나가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역시 다행인 일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충분히 이 시간을 즐겨보기로 생각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다이어트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십 년 동안 몸무게가 변한 적이 없었는데, 결혼 후 잦은 야식과 음주로 인해 10KG가 쪘다. 몇 번 다이어트를 시도해보긴 했으나 늘 식욕을 이기지 못하고 우울함과 짜증만을 잔뜩 얻고 실패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이내 곧바로 접었다. 가뜩이나 바깥에도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서 일만 해야 하는데 여기에 다이어트까지 한다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포기하고 대신 절충안을 찾았다. 야식이나 배달음식 없이 건강하게 식사하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굶거나 식사량을 줄이는 것은 부담이 되지만, 집밥을 해 먹는 것은 심리적으로나 건강적으로나 편안하면서 동시에 유익할 것 같았다. 


바로 마켓 컬리에서 식재료를 주문했다. 평소 집에서 밥을 자주 해 먹는 편이 아니라 파와 마늘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식재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영양적인 부분까지 잘 체크해서 균형 잡힌 식단을 챙기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못할 것 같아서 그냥 먹고 싶은 집밥 재료들을 담았다. 보리쌀, 오징어, 무, 삼겹살, 양파, 요구르트, 양지육수, 계란, 나물, 파김치. 그리고 최소한의 간식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감자 핫도그와 바닐라빈 아이스크림, 버터롤까지. 냉동실에 방치되어있던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다짐과 함께 최소한의 것들만 추리고 추려서 주문했다고 생각했는데, 계산하려고 보니 1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정확하게는 147,391원.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것이 물가라더니. 정말이다. 

늦게 주문했는데도 바로 도착했다. 역시 너무 편리하다.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다. 어쨌든 배송된 식재료들을 정리한다. 이 모든 식재료를 남김없이 모두 맛있게 잘 먹겠다는 다짐과 함께.


첫끼는 가자미 간장 조림을 해본다.

도대체 언제부터 냉동실에 있었는지 모를 냉동 가자미를 꺼내 해동한 후 앞 뒤로 칼집을 낸다. 그리고 소금으로 밑간을 한다. 그 사이 양념장도 만든다. 별 거 없다. 간장과 맛술, 다진 생강과 꿀, 그리고 후추를 넣고 잘 섞는다. 파도 적당한 굵기와 길이로 채 썬다. 간장 소스에 절여진 파가 꽤 맛있다. 밑간이 된 가자미를 프라이팬에 올리고 올리브유를 두른 후 강불로 앞 뒤로 살짝 굽는다. 이때 센 불로 구워야 가자미가 깨지지 않고 형태가 잘 유지된다. 어느 정도 모양이 잡히면 중 약불로 줄이고 미리 만들어둔 양념장을 앞뒤로 발라주며 속까지 익을 수 있도록 천천히 굽는다. 마지막으로 채 썰어둔 파를 넣고 익힌다. 간장과 꿀 때문에 달짝지근하고 생강 향이 은은하게 나니 꽤 맛있다.  


그다음은 시래기나물밥이다.

도저히 마른 시래기를 불려서 삶아서 손질해서 먹을 자신은 없어서 손질된 시래기를 샀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시간이 많이 단축되는지 모른다. 손질된 시래기를 물로 씻고 물기를 제거한 뒤 먹기 좋을 크기로 송송 자른다. 나는 씹는 맛을 느끼고 싶어서 약 2cm 정도의 길이로 잘랐다. 자른 시래기에 된장과 어간장, 다진 마늘, 들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간이 잘 베일 수 있도록 시래기나물을 무쳐놓은 후 쌀을 씻는다. 평소보다 물을 조금 더 넣고, 씻은 쌀 위에 무쳐놓은 시래기를 가지런히 펴서 올린 후 건강 잡곡 모드로 취사를 시작한다. 치이익-. 김이 빠지면 밥솥을 열어 잘 섞는다. 구수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별 다른 반찬 없이도 맛있다.


마지막으로는 갑오징어 볶음과 비빔밥이다. 

(갑오징어 볶음은 프라이팬에 볶다가 사방으로 양념이 튀어서 미쳐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이걸 사실 집밥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마켓 컬리에서 비빔밥 나물 세트를 샀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하나씩 프라이팬에 다 데웠고, 밥은 보리밥으로 직접 했다. 역시나 맛있다.


어쨌든 집에서도 일은 해야 하고, 식사 준비에 무조건 많은 시간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 안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밥을 해 먹었다. 때로는 완성된 음식을 사서 데워먹기도 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매 끼니 나 스스로를 위해 준비했고,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매 끼 나중을 위해서나 업무를 위해서 그냥 때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먹었다. 많이 먹었기 때문에 당연히 몸무게가 줄지는 않았지만, 몸은 오히려 가볍다. 그리고 마음은 가득 찼다. 앞으로 남은 3일의 격리 겸 재택근무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나를 위해 집밥을 해 먹고 싶다. 해 먹을 예정이다. 뭐야, 나 생각보다 집밥에 진심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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