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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상 앞은 즐거워

기록하는 2022년│Episode 26│2022.02.25

by 김자기

서재를 꾸미고 싶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미루고만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소비 요정을 격하게 환영하고 충동적으로 책상과 의자, 그리고 그 외의 것들을 샀다.

그리고 간단한 수술 후 회복을 위해 휴가를 내고 누워있던 중에 책상 조립까지 여차저차 어떻게 끝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의자가 배송됐다. 조만간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그다음 날 우연인지 6일 만에 출근해서 팀장님과 점심을 먹었는데 팀장님이 그날 코로나 확진이 되어 격리 겸 재택을 시작했다.

그리고 밀접접촉자인 나 때문에 남편도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고 재택을 시작했다.


집에는 남편이 게임을 위해 고사양으로 구매한 컴퓨터가 1대 있다. 기존에는 재택을 하더라도 조를 짜거나 일정에 따라 일주일에 1-2회 정도 했다. 그래서 남편과 겹치지 않게 조정이 가능했고, 같은 날 하게 되는 급한 경우에는 하루 정도는 예전에 쓰던 구형 노트북으로 버틸 수 있었다. 간단한 작업은 노트북으로 하다가 복잡한 작업을 해야 하면 잠깐 집 컴퓨터로 옮겼다가 다시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면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적어도 이틀은 꼬박 집에서 일을 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 추가로 5일 이상을 집에서 같이 일해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제일 바쁜 월말 월초의 시기다. 기존처럼 컴퓨터 1대로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급하게 컴퓨터를 샀다. 집에 노트북도 있고 패드도 있는데 컴퓨터가 한 대 더 있을 필요가 있나, 이 시기만 잘 버티면 또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대 더 사기로 했다. 어쨌든 컴퓨터가 한 대 더 있으면 조금 더 재미있는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컴퓨터를 사면서 책상 위치도 변경했다. 아래는 기존 컴퓨터 책상 모습이다.

KakaoTalk_20220222_092604473.jpg 기존 컴퓨터 책상 모습. 'ㄱ'자 모양이다.

'ㄱ'자 모양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구석에 껴 있거나 파티션으로 공간 구획이 된 안쪽의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남편도 저 안쪽의 자리를 마음에 들어 할 줄 알았는데, 남편은 3면이 막혀있어 답답하다고 했다. 그리고 저렇게 앉으면 남편이 나갈 때마다 내가 일어났다 앉았다 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바꿨다. 하나는 기존대로 벽을 보고, 하나는 책장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KakaoTalk_20220225_222342699.jpg 바뀐 컴퓨터 책상 모습. 서로 등을 보고 있다.

서로 등을 보고 앉는다. 책상을 책장 앞에 붙이니 책장 하단의 서랍장을 열기 굉장히 불편해졌다. 그리고 옆 벽 옷장도 문을 열기 어려워졌다. 원래는 이 방을 손님방으로 쓰려고 최대한 짐을 두지 않고, 손님용 이불과 옷장만 두려고 했다. 그런데 일단 코로나로 인해 손님이 집에 오지 않고, 당장은 재택근무가 더 급하니 업무 능률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구조는 꽤나 만족스럽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기 수월하다. 작은 방 가득 책상 2개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마치 회사를 차린 것 같다. 간판도 하나 만들어서 붙이자고 남편과 농담을 한다.


새로 생긴 책상에서 하루를 알차게 보낸다. 요청받은 업무를 처리하고, 다음 주 마감을 위한 준비도 한다. 그러다 보니 벌써 퇴근시간이다. 하루 종일 집에 있었지만, 어쨌든 금요일 퇴근을 맞이해서 남편과 오랜만에 냉동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한다.


저녁을 맛있게 먹은 후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이제 책상과 함께 하는 진짜 내 자유 시간이다. 아직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지만, 내 책상이 꽤나 마음에 든다. 조만간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겠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오일파스텔을 꺼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지만, 오일파스텔로 칠하는 것은 너무 좋다.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오일파스텔로 흰 종이를 채우다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지난주 퇴근길을 칠해본다.

KakaoTalk_20220225_222340886.jpg 아직 어수선하지만 나는 좋은 내 책상

갑자기 지난 생일에 선물 받은 오로라 조명이 생각난다. 너무 예쁜데 마땅히 쏠 곳이 없어서 제대로 켜보지 못했다. 있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한 채 서랍장 안에 있던 조명을 꺼냈다. 지금 이곳에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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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작은 방이 따스한 빛으로 가득 찬다. 더 신나게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일기를 쓰다 보니 또 새롭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제의 매일매일이 조금씩 쌓여 이렇게 책상을 완성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이 별 것 아닌 책상이 하나 생겼을 뿐인데 참 좋다. 집에는 큰 식탁도 있고, 바 테이블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무엇인가 하기에는 불편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작지만 내 공간이 생겼고, 이곳에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건 할 수 있다. 아직 회사 일 말고 뭘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상 앞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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