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기 Feb 23. 2022

재택근무 좋아. 진짜 좋아.

기록하는 2022년│Episode 23│2022.02.22

재택 1일 차다. 주말 동안 국 내에서 3명이 코로나에 확진됐다. 본인은 아니더라도 가족이 확진된 경우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내 뒷자리 선배 두 명이 확진됐다. 나는 수술로 인해 휴가였고, 마지막 출근 후 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 그 뒤로 회사를 안 갔기 때문에 밀접접촉자는 아니다. 하지만 국뿐 아니라 회사 전체에 확진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도 많기 때문에 당분간 가능하다면 재택근무 및 직출, 직퇴를 한다고 한다. 나만 더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그냥 정말 말 그대로 턱 끝까지 쫓아온 느낌이다.


어쨌든 어제 휴가를 마무리할 때쯤 팀장님께 전화를 받았고, 화요일 재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난 목요일 별도의 재택 준비를 하지 않고 퇴근했기 때문에 마음이 분주하다. 회사에 사람이 있을 때 무엇인가 해야 한다. 얼른 전화해서 컴퓨터를 켜달라고 요청한다. 별도의 시스템이 없는 우리 회사는 구글 원격 데스크톱을 이용해 집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회사 컴퓨터가 켜 있어야만 하는 이유다. 전화기도 착신전환으로 돌려놓는다. 업무용 책상 달력과 스케쥴러를 찍어달라고 한다. 별도의 업무일지를 어플로 작성하면서도 동시에 나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을 손을 적어두고 지워가는 것을 좋아한다. 비효율적인 방법이지만, 하기 싫은 회사 생활을 즐겁게 해 나가기 위한 나만의 방법 중 하나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편한테 확인하니 남편도 내일 재택이라고 한다. 이래서 책상을 두 개 산거다. 노트북도 꺼내서 책상 위에 세팅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야 한 숨 돌린다. 


그리고 맞이한 재택 첫날이다. 


- 7시 30분. 출근을 위해 평소 늦어도 7시 전에는 일어나는 나는 알람도 울리지 않았는데 눈이 떠졌다. 아직도 출근까지 1시간 30분이 남았다. 씻을 필요도 없고, 화장을 할 필요도 없으니 그대로 내 시간이다. 조금 더 자기로 한다. 


- 8시 40분. 두 번째 기상이다. 간단히 이만 닦고 새로운 컴퓨터 책상 앞에 앉는다. 이럴 줄 알고 딱 어제 책상을 조립한 건가. 예상치 못한 상황을 스스로도 모르게 예상해버린 나 자신 칭찬한다. 


- 9시. 출근 확인을 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어제 재택 준비를 하면서 정리해뒀다. 제일 급한 순서대로 하나씩 해나간다. 회사에 출근할 땐 누군가 한마디라도 나누고, 또 막내다 보니 간단한 업무들을 부탁받을 때가 많다. 그런데 집에서 업무를 보다 보니 그런 것들이 아무것도 없다. 남편과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같은 회사를 다니는 사내 부부가 체득한 회사 일 잘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일의 능률이 오른다. 속도를 낸다. 


- 10시 30분. 띵동. 벨이 울린다. 이 주 동안 기다렸던 의자가 배송됐다. 바로 정리해서 앉아본다. 딱딱한 의자에 앉다가 업무에 최적화된 의자에 앉으니, 앉아있어도 날아갈 것 같다.  


- 10시 40분. 의자 박스를 정리하는 김에 일어나서 점심때 먹을 밥을 준비한다. 쌀을 씻어 밥솥에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른다. 평일 저녁에는 시간이 부족해 늘 쾌속이나 흰쌀밥 위주로 먹는데 오랜만에 잡곡을 가득 넣어 건강잡곡 코스를 돌린다. 45분 소요 예정이다. 취사 버튼을 누른 후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남편은 그 사이 빨래를 돌리고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하나만 더 처리하면 오늘 해야 할 급한 일은 모두 끝낼 수 있다.


- 11시 30분. 평소 회사 점심시간에 맞춰 점심 준비를 한다. 그 사이 잡곡밥은 맛있게 완성이 됐고, 엄마가 잔뜩 챙겨준 밑반찬도 가득 있어 김치찌개만 데우면 된다. 김치찌개를 데우는 동안 밑반찬을 꺼내 담는다. 5분 만에 점심 준비가 끝났다. 이제야 비로소 남편과 이야기를 나눈다. 같은 회사에 다니고, 같은 층에 있다 보니 서로의 업무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처럼 바로 옆에서 보니 또 아니다. 서로의 업무에 대해, 서로의 회사 생활에 대해 심심한 위로를 건네며 점심을 먹는다.


- 12시. 밥을 다 먹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유롭게 먹었는데도 아직 12시다. 나는 설거지를 시작한다. 남편은 다 된 세탁물을 건조기에 넣는다. 건조기에 들어있던 옷가지들을 꺼내어 갠다. 옷 정리가 끝난 후 커피를 내린다. 평소 출근할 때는 무조건 커피를 산다. 아침에 커피를 먹지 않으면 업무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커피를 마시지 않은 것도 잊을 만큼 집중이 잘 된다. 


- 12시 30분. 아직도 점심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남편은 오후를 위해 다시 눕는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어제 못쓴 일기를 쓴다.


- 1시 15분. 오후 업무를 위해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남편이 내려준 커피와 함께 하니 더욱 즐겁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차가운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즐거운 재택근무를 위한 내 나름의 사치다. 


- 4시. 띵동. 다시 벨이 울린다. 렌털 업체 방문이다. 공기청정기 필터를 갈아주신다.


- 5시. 밀렸던 일과 마감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다 끝냈다. 야근을 하거나 일부는 내일의 나에게 미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끝냈다. 슬슬 업무 정리를 한다. 남은 한 시간 동안은 루팡처럼 있어야지.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저녁에는 떡만둣국을 먹고 싶어서 냉동실에 있던 떡국떡을 꺼내 물에 불려놓는다.


- 6시. 일일 업무보고 후 온라인 상에서 퇴근한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떡만둣국을 끓이기 시작한다. 떡만둣국은 내가 좋아하고 동시에 빠르게 잘하는 음식 중 하나다. 육수와 떡과 만두만 있다면 10분이면 완성이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있다. 파와 마늘도 있다. 휘리릭 끓여낸다.


- 6시 30분. 저녁을 다 먹었다. 남편과 함께 누워볼까를 잠시 고민했는데, 이대로 내일을 될 것 같아 바로 정리를 시작한다.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나는 분리수거를 한다.


- 7시. 저녁 산책을 간다. 바깥이 너무 깜깜해 시계를 봤다가 깜짝 놀랐다. 아직도 7시라니.


- 8시.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둘러본 동네는 그 사이 조금 변했다. 집에서 역으로 가는 길에 공사 후가 궁금한 곳이 3곳이나 생겼다. 맛있는 커피나 케이크 집이면 좋겠다. 집에 와서 간단히 씻고 남편과 함께 동영상을 본다. 격주로 나가는 공부 모임이 있는데, 지난주에 못 나갔더니 수업 동영상을 보내줬다. 1시간 정도 집중해서 본다.


- 9시. 갑자기 까먹고 못 한 업무가 생각났다. 오늘 꼭 안 해도 되지만 해놓는 것이 훨씬 편하다. 컴퓨터를 다시 켜고 업무를 마무리한다. 그 사이 남편은 게임을 한다. 남편이 묻는다. "혹시 닭발 먹을래?"


- 10시. 띵동. 또다시 벨이 울린다. 닭발이다. 다년간의 닭발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서 세팅을 완료한다. 오랜만의 야식이다. 


- 11시 30분. 닭발을 다 먹고, 정리도 끝냈다. 몇 시나 됐나. 시계를 보니 아직 11시 30분이다. 세상에나. 재택이 이렇게나 좋은 것이구나. 회사 업무도 많이 했는데, 집안일도 많이 했다. 산책도 다녀왔다. 점심, 저녁도 모자라 야식까지 먹었다. 그런데도 하루 종일 피곤하지 않았다. 출퇴근에 쓰이는 에너지와 시간이 정말 많았나 보다. 새삼 하루 안에 버려지는 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랍다. 다들 이런 가운데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살아간다니. 대단하다. 정말 오늘 하루 최고로 알찼다. 간단히 소화시키고 잘 자야지.


원래 야식으로 먹은 닭발에 대해 일기를 쓰려고 했다. 제목도 정해뒀다. <소울푸드가 뭐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닭발인가>였다. 그런데 다른 날에 비해 유독 야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니 재택근무 덕분이었다. 재택근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재택근무 좋다. 진짜 좋다.

작가의 이전글 하다 보면 되겠지, 책상 조립 (난 왜 가만 못 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