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28│2022.02.27
일요일 밤이 가는 것이 아쉽다. 내일은 월요일이다. 나름 오랜만의 출근이라 설렐 줄 알았는데 아니다. 그냥 여전히 출근하기 싫고, 여전히 일요일 밤은 아쉽다. 저녁으로 오겹살 제육볶음을 과하게 먹었더니 여태 배가 부르다. 그런데도 뭔가를 먹고 싶다. 계속 헛헛하다. 무엇인가 먹고 싶다. 이대로 일요일이, 그리고 주말이 끝나가는 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쉽다.
끝나가는 일요일 밤을 붙잡고 남편과 무엇인가 먹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무엇을 먹을 것인가.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일단 배는 부르다. 포만감이 있는 음식은 못 먹을 것 같다. 족발, 치킨, 피자 등을 지운다. 날 것도 오늘은 왜인지 끌리지 않는다. 야식으로 제일 좋아하는 닭발도 오늘은 너무 과한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뭘 안 먹어야 할 것 같은데 포기하고 싶진 않다. 무엇이건 찾아내서 이 끝나가는 일요일 밤을 달랠 것이다.
마침 엊그제 연남동의 중국 식자재 마트에서 사 온 라면이 보인다. 일단 중국 라면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중국 식자재 마트에서 팔고 있었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똠양꿍을 좋아하는 남편의 눈에 띄어 사 오게 됐다. 한국의 라면보다 작고 가벼운 것이 지금 같은 저녁 야식으로 딱인 것 같다. 똠양꿍의 새콤달콤한 맛을 상상하자 침이 고인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만약 정말 너무 맛이 없더라도 슬퍼하지 않고 과감하게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조리하는 건가. 한국 라면처럼 끓여 먹는 것인가. 봉지의 뒷면을 봐도 태국어로 설명이 쓰여있어서 도통 알 수가 없다. 검색한다. 역시. 인터넷에는 없는 것이 없다. 우리가 구매한 라면은 ① 태국의 와이와이 톰양문공플레이버 인스턴트 누들(아래 사진에서 왼쪽. 빨간색 봉지)과 ② 베트남의 하오하오 새우맛 라면(아래 사진에서 오른쪽. 분홍색 봉지)이다.
기존 한국 라면처럼 냄비에 끓여먹어도 되고, 접시에 담아 컵라면처럼 물을 부어도 되고,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된다고 한다. 우리는 컵라면처럼 물을 끓여 부어 먹기로 했다. 그게 제일 간편할 것 같다. 뜯어서 그릇에 담고 소스를 뿌린다. 한국 라면에 비하면 일단 면이 굉장히 가볍고 약하다. 손으로 톡 건들면 부서질 정도의 질감이다. 특이한 점은 면 자체의 간이 세다는 것이다. 봉지를 뜯다가 우수수 부서져버린 몇 가닥의 면을 먹었는데, 그 자체가 굉장히 짜고 맛있었다. 과자 뿌셔뿌셔의 자극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물을 붓고 2분 정도 기다린다. 면의 양이 적어서 인지 붓는 물의 양도 적었는데(① 톰양문공플레이버 인스턴트 누들 : 350ml ② 하오하오 라면 : 400ml), 붓고 기다리는 시간도 짧다.
드디어 맛을 본다. 생각보다 맛있다. 특히 톰양문공플레이버 인스턴트 누들의 맛이 좋다. 새콤달콤한 똠양꿍의 맛을 잘 살린 것 같다. 텁텁한 맛없이 새콤한 맛이 없던 식욕도 돋게 한다. 하오하오 라면은 익숙한 맛이다. 어떤 블로그에서 덜 자극적인 육개장 컵라면 맛이라고 표현했던데 가장 정확한 것 같다. 그런데 덜 자극적인 것은 아닌 것 같고, 육개장 컵라면과 약간 다른 방식으로 자극적이다. 특이한 점은 두 개 모두 별도의 건더기가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징어 짬뽕 안에 들어있는 오징어 건더기와 튀김 우동 안에 들어 있는 튀김 건더기를 제외한 컵라면의 모든 건더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건더기가 없는 것이 괜찮다. 더 좋다.
라면 하나 먹었을 뿐인데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일요일 밤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라면도 두 개 다 먹었다. 분명 배고프지 않았는데 어느새 없다. 기대 이상으로 우리 입맛에 잘 맞았기도 했지만, 라면이 우리의 지난 여행들을 떠올리게 했다. 베트남 여행 중 들린 어떤 휴게소에서 먹은 점심을, 홍콩 여행 중 무조건 들어간 시장 내 식당에서 먹은 아침을 떠올리게 했다.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월요일 출근에 대한 걱정은 줄어든다. 끝나가는 일요일 밤은 여전히 아쉽지만, 보낼 수 있다. 일요일 밤에 먹은 야식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