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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01. 2022

나는 일이 싫은 게 아니라 출근을 싫어하는 것이다

기록하는 2022년│Episode 29│2022.02.28

꾸준히 뭘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특히 끝맺음을 잘하지 못한다. 내 최대 단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추진력과 실행력이 있어 빠르게 시작하고 해 보는 편인 것에 비해 그것을 잘 가꿔서 마무리하지 못한다. 막상 해보니 내가 능력이 별로 없어서 과감하게 빠르게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냥 좀 지겨워진다. 금방 싫증이 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난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내가 시작하고 나서 계속해서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스스로 같은 모습을 보게 되니까, 아무래도 더 빨리 지겨워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연습하고 다시 해봐야 하는데, 이미 싫증나 버린 것에 그러지 못한다. 그냥 난 딱 그냥 그 정도, 여기까지인 것 같다. 꾸준함을 기르기 위해, 그리고 끝맺음을 잘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아무래도 잘 못한다. 이런 내가 나 스스로도 참 한심하고 좀 그래 보일 때가 많다. 그래도 '뭔가 계속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의 마음으로 즐겁게 뭐라도 해보려고 노력 중인데, 확실히 '꾸준함'은 그 어떤 것보다 엄청난 재능인 것 같다.


어쨌든 그런 내가 한 회사에, 그것도 인사이동 없이 한 팀에서, 거기에다 업무 조정도 크게 없이 같은 일을 하며 약 6년째 다니고 있다는 것은 나 스스로 놀라운 일이다.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하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겨우 6년 가지고 뭘 이렇게 오버스럽냐고 할 수 있겠지만, 각자의 기준은 각자가 정하는 거니까. 일단 내가 보는 나는 끈기라고는 도무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기준에서는 놀라운 일이다. 


왜 안 그만뒀냐. 위기가 없었냐. 하면 잘 모르겠다. 작은 위기는 매일매일 찾아오고, 큰 위기도 종종 찾아왔다. 특히 올해 초에는 퇴사 의사를 밝히고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기도 했다.(가 물론 바로 수리되지 못했고, 그 사이 조금은 더 다녀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어영부영 다니고 있다.) 사실 위기는 큰 이유들은 아니었다. 그냥 이 회사를 계속 다니면 지금처럼은 계속 살겠지만, 더 나은 삶(이 보장된 것은 아니니까 달라진 삶이라고 해야 할까)을 살 수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회사에서 나의 십 년 후, 이십 년 후가 지금과 다를 것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회사에는 좋은 사람들은 너무나 많지만, 닮고 싶다, 저렇게 커리어를 쌓고 싶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회사 내 직종 별 차별에서 오는 자잘 자잘한 불만들도 계속 쌓여갔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못한 이유 역시 간단하고 별 것 없다. 회사는 무척이나 안정적이고,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알만 한 회사에 다닌다는 편안함, 그리고 부모님이 내가 이 회사에 다니는 것을 몹시 자랑스러워한다는 것 등이다. 아. 가장 큰 이유라면 이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다. 그냥 이 회사를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은데, 퇴사 직전 그 하고 싶은 일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맞나. 그렇게 하고 싶었더라면 이런저런 핑계 대신 회사에 다니면서 뭐라도 해보지 않았었을까. 하는 그런. 그렇게 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나갔다가 망해버릴 것 같은 불안도 있었다. 그래서 현실적인 문제를 핑계로 퇴사를 잠정 보류했다. 일단은 다니면서 무엇이건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수술로 인한 휴가, 확진자 발생으로 인한 재택,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격리 겸 재택 등을 이유로 거의 이주일 가까이 회사를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 수술 전 검사 등의 이유로 수시로 반차를 냈던 것들을 포함하면 거의 삼 주 가까이 회사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다. 일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집에서도 야근을 했고, 반차를 내는 날에는 점심도 걸러가며 일을 했다. 그런데 지난 이주 간 내 삶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름다웠다는 것이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 시간이 꽤나 괜찮았고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시간을 주도적으로 쓸 수 있었다. 일의 효율도 높아졌고, 하루 종일 힘이 넘쳤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 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출근만 안 했지 일은 계속했었기 때문에 내가 계속 회사에 잘 다니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동안 노력해온 결과, 드디어 내가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았나 싶었다. 앞으로도 지난 몇 주처럼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일요일 밤 마지막 자가검사에서 음성이 나오고, 인사팀에 보고를 하고, 월요일 출근을 명 받았을(?) 때 나도 모르게 아주 잠깐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출근함과 동시에, 아니 그보다도 먼저,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씻을 때부터 아주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바로 알게 되었다. 우선 출근이라는 행위를 위해 재택근무 일 때보다 2시간은 일찍 일어났다. 여유로운 아침, 편안한 스트레칭은 무슨. 오랜만에 출근이라 나도 모르게 아침부터 긴장이 된다. 알람을 듣자마자 일어나서 씻고, 머리를 감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한다. 오랜만에 화장이라 아이라인이 잘 그려지지도 않아서 그렸다 지웠다는 반복 한다. 화장을 끝내자마자 마스크를 쓰고 남편과 함께 회사로 향한다. 출근에는 차로 20분 정도 소요된다. 회사에 도착하니 8시 20분이다. 신문을 챙겨 9층 사무실로 올라간다. 이미 국장님은 자리에 앉아 있다. 국장님 자리로 가 신문을 드리고 인사를 한다. 서로 간단한 안부를 묻는다. 자리로 돌아와 출근 확인을 하고 컴퓨터를 재부팅한 후 업무를 시작한다. 재택을 할 때는 8시 50분에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출근을 하니 8시 30분인데도 이미 늦은 기분이 든다. 말일이라 조금 바쁜 날이다. 집중해서 업무를 하려는데 옆 팀 선배가 오랜만이라며 커피 한 잔 하자고 한다. 알겠다고 하고 따라나선다. 커피를 마시고 서로의 근황을 나눈데 30분 정도가 걸렸다.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오래 걸린 것은 아니지만, 바쁜 날에는 이 정도의 시간도 길게 느껴진다.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확진 후 첫 출근한 다른 선배가 인사를 온다. 옆 선배도 합류한다. 자연스럽게 잠깐의 수다타임이 이어진다. 선배가 가고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한다. 한 한 시간쯤 지났을 까 옆 팀 팀장님이 부른다. 접대용으로 쓸 코로나 자가 키트 포장에 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 내 막내 급들이 자연스럽게 모인다. 4세트씩 한 묶음. 거기에 직접 인쇄한 설명서를 첨부에 포장한다. 이것을 이렇게까지 포장해야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생각할 필요 없다. 이런저런 생각 대신 빠른 손만이 필요할 때다. 빨리 해야 내 일을 할 수 있다. 겨드랑이가 젖어갈 때쯤 모든 포장을 다 끝냈다. 1시간 정도 걸릴 줄 알았는데, 45분 만에 끝냈다. 손 씻고 자리에 와서 다시 일을 한다. 망했다. 벌써 점심시간이다. 


출근 후 내 반나절은 이렇게 지나갔다. 출근 시간보다 40분을 일찍 출근했지만, 신문 배달 및 국장님과의 근황 토크 10분, 선배와의 커피 타임 30분, 다른 선배와의 수다타임 20분, 포장 45분 등으로 인해 겨우 한 시간 제대로 일할 수 있었다. 결국 오전에 계획했던 일의 반을 하지 못했다. 이런 모든 것이 일의 연장이고, 철 없이 불만만 많다고 한다면, 사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출근한 지 겨우 3시간 만에 벌써 힘이 없다.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다. 저녁에 남편과 오랜만에 망원 우동에 가기로 했는데, 벌써 가기가 싫다. 퇴근 후 집에 가서 그림을 그려볼 계획이었는데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오후는 다를까 싶지만 비슷하다.


그래도 수요일부터는 다시 교대 재택이니까 힘을 내자고 다짐한 순간, 우리 국은 앞으로 재택근무가 없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회사에서는 아직 재택을 권하고 있고,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다른 국의 남편도 주 1-2 회지만 재택을 한다고 하는데, 왜 우리만 안 한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더 이상의 재택과 직출직퇴는 없다는 국장님의 생각은 확실했고, 아무도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냥 이대로 나의 재택근무는 끝난 것이다. 내가 재택근무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이렇게 끝낼 수 없는데.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아무것도 하기 싫다. 우선 포장해 온 망원우동을 먹는다. 퇴근 후 겨우 힘을 내서 망원우동에 가긴 갔다. 오랜만에 간 만큼 먹고 올까 싶었지만 우선 웨이팅이 너무 길어 그 모든 시간을 견딜 체력이 없었고, 복잡한 사람들 속에서 밥을 먹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포장을 했다. 어쨌든 계획의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 그리고 포장해온 망원우동도 맛있다. 그리고 바로 누웠다.


오랜만의 출근 후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일이 싫은 게 아니라 출근을 싫어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그냥 이 일이 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른 다른 일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일을 안 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불로소득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물론 이 일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일 자체만이 문제였던 것도 아닌 것이다. 몇 주간의 재택근무를 하면서 나는 시간을 능동적으로 쓰는 것을 몹시 좋아한다는 것과 출근이라는 행위 자체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출근해서 회사에 있는 시간 동안 불필요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하니 퇴근 이후의 삶을 계획대로 살기 어려웠고, 출근 자체로 인해 내일에 대한 걱정과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니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내 에너지를 끌어다 쓰지 못했다. 양껏 쏟지 못했다. 


오랜만의 출근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일과 출근을 분리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무조건 일을 바꾸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사실은 형태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쉽게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동시에 오히려 조금 더 복잡해진 것 같다. 어쨌든 추가적인 해결 방식을 찾았으니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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