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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02. 2022

고민하는 남편을 보고 돈을 벌고 싶어졌다

기록하는 2022년│Episode 30│2022.03.01

재테크 열풍이다. 사실 열풍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만큼 당연한 현실이다. 주식이나, 부업, 부동산 투자, 비트코인, N잡, 아르바이트 등 월급 외 다른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주 조금의 여윳돈으로 주식을 샀다. 그러나 수입을 내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수입을 낼 수 있을 만큼의 시드머니도 아닐뿐더러 제대로 된 관심이나 공부 없이 남들이 다 한다고 하니 따라 산 처지라 애초에 수익은 기대하기 부끄럽다. 사실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할 처지도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뭐.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돈이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 당연히 돈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뭐 그냥 그럭저럭 살 만했다. 예를 들어 신혼집을 구할 때 원하는 동네에 집을 매매할 수는 당연히 없지만, 회사 근처에 전셋집을 구할 수 있는(물론 은행 대출 80%다) 정도였다. 신혼은 전세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집을 사는 친구들에 비해 내가 못 산다고 크게 우울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 뒤로 엄청나게 폭등한 집값을 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현타가 종종 찾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돈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언젠가는 돈을 많이 벌겠지라는 근거 없는 막연한 긍정도 있었다.


이렇게 경제관념이 없고 막연한 것에는 대학 졸업 후 나름 계속 일을 해왔던 것도 한몫한 것 같다. 취업 준비 때는 학교나 공공기관 등  '꿀알바'자리를 쉽게 구해 노동 강도에 비해 높은 시급을 받았고, 종종 사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4-5일 빡세게 공모전 등을 해서 상금으로 필요한 것을 샀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짧은 취업 준비 기간 안에 취업에 성공했다.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그런 회사였다. 물론 급여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준비에 이 정도의 노동 강도에는 적절한 수준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돈이 나를 막 따라다녔다거나 넘치는 돈 속에 있었다는 것은 절대 전혀 아니다. 다만 나는 스스로 내가 벌 수 있는 돈의 한계를 정해놓고, 그 수준과 비슷해지면 대충 만족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 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했다. 하지만, 돈이 구체적으로 얼마큼 벌고 싶은지, 왜 그만큼 벌고 싶은지, 벌어서 어떻게 쓰고 싶은지, 어떻게 벌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는 정말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계기는 남편이다.


남편과 집 근처 쌈밥집에 갔다. 맛있게 먹고 있던 중 좋아하는 회사 선배 가족(선배, 선배 배우자, 자녀 2)을 만났다. 이렇게 바깥에서 선배의 가족 완전체를 만난 것은 처음이라 굉장히 반가웠고, 애기들도 너무 귀여워서 용돈을 주기로 했다. 남편이 얼마의 금액을 이야기했는데, 내가 그건 너무 적은 것 같아서 안 주느니만 못한 것 같고 (남편이 말한 금액의) 두 배 정도는 줘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남편은 약간 고민하는 것 같았는데, 알겠다고 했고 용돈을 주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그런데 차에 타서 남편이 말했다.


"사실 나 아까 조금 고민했어. 웃기지. 나 요즘 커피값 아껴가면서 돈 모으고 있는데 갑자기 그 돈이 너무 크게 느껴지더라. 그 돈이 필요한 것은 애기들이 아니라 나 아닐까. 막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도 어쨌든 지금 기분은 정말 좋다. 왜 고민했는지 모르겠어."


남편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원래 돈을 막(?) 쓰는 사람이었다. 어느 자리에 가도 돈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친구들과 후배들을 열심히 챙겼다. 그런 남편이 그렇게 고민했다니 나에게는 조금 충격이었다. 혹시 결혼으로 인한 고정지출과 비용들이 남편을 저렇게 만들었나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걱정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전혀 아니라며 그냥 돈을 쓰면서 얻는 즐거움보다 돈을 아끼면서 얻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물론 남편이 성장한 것일 수도 있다. 생각 없이 펑펑 돈을 쓰던 지난날을 후회하고 새롭게 태어나고자 노력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뭐랄까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남편이 저런 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긴 생각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돈을 더 절약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아마 내가 돈을 더 벌 수록 남편은 더 고민할 테다. 그리고 저런 고민은 모든 사람이 하는 당연한 생각일 테다. 그런데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고 남편이 돈을 막 쓰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다니.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다. 그래도 어쨌든 돈을 벌고 싶은 강한 동기가 생겼다. 아직까지 돈을 제대로 벌어 본 적이 없어서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별 수 있나. 공부해야지. 그래도 어쨌든 돈을 벌고 싶다는 동기가 생긴 것이 나름의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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