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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20. 2022

알쓰 아내와 알콜러버 남편이 함께 불토를 보내기까지

기록하는 2022년│Episode 47│2022.03.19

나를 만나기 전 남편은 일주일에 6일을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다. 뭐 그렇게 술 마실 일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체력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먹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이 보였다.


반면 나는 알콜 쓰레기다. 한 잔도 못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술을 마시면 얼굴이 금세 벌게지고, 조금 더 마시면 온몸에 열이 오르며 울긋불긋 반점이 생긴다. 한 잔 먹는다고 바로 토한다거나, 기억을 잃는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술을 마시면 언제나 힘든 것은 확실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술을 한 잔도 못하는 아빠와 술을 마실 수는 있으나 좋아하지는 않는 엄마가 만나 내가 태어났으니 아무래도 그 중간 어디쯤일 텐데, 아무래도 아빠를 훨씬 더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술을 전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내 주량은 언제나 모든 모임에서 최하위 그룹에 속했다. 술을 잘 마시고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내가 술을 하나도 못 먹건, 한 잔 먹건 똑같이 술 못 마시는 사람이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것은 아무래도 한국사회에서 굉장히 불편한 부분이 있다. 어느 모임에 가건 술을 마실 때면 나는 늘 나의 주량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고, 그런 것들이 불편한 자리에서 먹다 보면 늘 실수하고 후회하는 것은 내 몫이다. 


가끔은 술을 배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어이없는 말로 때려 맞을 때도 있었다. 애초에 그런 것들에 노력이 왜 필요한 것인지, 술과 노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기나 한 건지 묻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과거의 나는 술을 못 먹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어서 꽤 노력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바보 같은 생각인데, 그때는 그랬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언제 행복한지 보다는 어떻게 해야 조금 더 잘 적응할 수 있고 함께 즐거울 수 있는지에 대해 집착했던 것 같다.) 대학교 때는 어떤 그룹에 속하고 싶어서 못 하는 술에도 매일 3시까지 술자리에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나만 맨 정신인 그 상황에 너무 재미가 없어서 혼자 집에 온 적도 있다. 인턴 때는 인턴이라 분위기 못 맞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일주일에 6일을 (지금 생각해보면 토요일까지 따로 만나서 술을 먹었던 그곳이 이상한 것 같지만, 그때는 그런 자리에 빠지면 큰 일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회식에 참여하다 안 좋아진 간수치와 함께 인턴 기간을 종료했다. 회사에서 처음 입사하고 한 회식에서는 조개껍질에 술을 먹었는데, 정신을 잃을까 봐 계속 허벅지를 꼬집었다. 다음 날 시퍼렇게 멍든 허벅지를 보며 이런 게 사회생활이라면 나는 아무래도 오래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술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다 보니 감정이 약간 격해진다. 그렇지만 사실 이렇게 구구절절 쓴 것만큼 술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분명 술 덕분에 즐거웠던 적이 훨씬 많다. 술로 만나게 된 인연도 있고, 술 덕분에 오해를 푼 경험도 있다. 다만 마음의 반작용 때문인지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보다 더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런 노력과 시기를 거치면서 나는 자연스레 술을 잘 먹지 않는 그룹에 속하게 됐다. 내가 술을 좋아하지 않고 안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고, 편해졌다.


이런 내가 도대체 남편을 왜 만나게 된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나의 이상형은 술을 적당히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내게 술이라는 것이 고려 대상이 아니었기에 술이 그런 조건에 속하지도 못했다. 술이 연인 관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안 했던 나다. 남편도 의문일 것이다. 결혼 후 부인과 함께 반주를 하는 것에 로망이 있던 사람인데, 이렇게 술을 못 먹는 사람이라니.


그래서 연애 초기에는 정말 많이 싸웠다. (남편은 싸운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본인이 혼난 거라고 한다.) 당시 머리로는 남편을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술을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고 술 때문에 개인의 일에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남편은 성인이 된 후 모든 중요한 순간들을 술과 함께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렇게 지내왔다. 그래서 한순간에 바뀌는 것도 어렵고, 무작정 바꾸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남편을 보는 나는 거의 매일 당황스러웠다. 술을 남편만큼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사람도 가까이에서 처음 봤고, 술 때문에 내가 남자 친구와 싸울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남편의 음주 행태는 문제에 속하지도 않는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남편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해는 여전히 안 됐다. 이해가 전혀 안 되는 나 스스로에게도 화가 났고, 또 술을 마시는 남편 자체도 꼴 보기 싫었다. 그럼에도 사랑의 힘을 위대한 것인지 우리는 (이라고 쓰고 남편이라고 읽어야 할 것 같다.) 방법을 찾아나갔다. 남편은 주 6회에서 주 1.5회 정도로 빈도를 과감하게 줄였다. 그리고 술로 인해 내가 화를 낼 때마다 차분히 화를 듣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조율을 잘 한 덕분인지 우리는 험난한 연애 과정을 마치고 결혼했다.


결혼하니 술이 다시 문제였다. 연애 때 조율된 남편의 술자리 빈도가 결혼 후에는 적합하지 않게 느껴진 것이다. 더 확실히 줄일 것을 요청했다. 남편은 힘들어했지만 노력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옆에서 보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행복하자고 결혼한 것인데, 결혼 후 남편이 나만큼은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고 술 먹는 남편을 참을 마음도 없었다. 절충안을 찾았다. 바로 집에서 나와 함께 먹는 것이다. 갑자기 술을 끊기는 어려울 테니 술을 먹고 싶으면 집에서 나와 함께 먹자고 했다. 자기가 먹고 싶을 때면 언제는 옆에 앉아서 함께 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알겠다고 하더니 집에서 술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신혼 초에는 매일 야식과 함께 술을 먹었다. 술 취한 사람 옆에 맨 정신으로 앉아있기가 때로는 싫어서 나도 가끔은 맥주 한 캔에 남편보다 먼저 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혼 후 3년. 지금은 (내 기준) 적당한 수준이 되었다. 남편은 한 달에 한 번 친구들과 술을 먹을까 말까 하고, 집에서도 주 1회 정도 나와 함께 가볍게 맥주를 먹는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조정이 된 것에는 코로나의 영향이 아마 제일 클 것이다. 어쨌든 남편은 연애 전에 비하면 거의 취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이렇게 조율된 술 덕분에 남편과 나는 각각 잃고 얻은 것이 있다. 우선 남편. 남편은 특별히 잃은 것은 없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사람을 잃지 않았을까 싶다. 늘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술자리에 자꾸만 빠지게 되니 자연스레 어느 순간에는 남편을 부르지 않는다. 남편이 얻은 것이라 하면 우선 건강이고, 그다음은 취향의 발견이라고 한다. 시끌벅적한 술자리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술 마시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소주를 정말 못 먹는 나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다른 술을 찾다 보니 다양한 술을 접하게 됐고 중국술이 얼마나 맛있는지, 본인과 제일 잘 맞는 술임을 알게 됐다고도 했다. 나는 우선 적정 체중을 잃었다. 신혼 초 매일 밤의 야식 파티는 나에게 +10KG을 선물했다. 그리고 술 먹는 것의 의미를 진심으로 알게 됐다. 왜 그렇게들 술에 집착하고 사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됐고, 또 술을 통한 해결방법도 분명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해결 방법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 술 한 번 먹고 깔깔대고,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 갖는 의미들도 알게 됐다.


즐거운 토요일 밤을 맞아 남편과 오랜만에 먹태를 먹었다.

남편이 병맥 6개와 캔 맥 2개를 먹을 동안 나는 펩시콜라 제로 라임맛 한 병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함께 했다. 다행인 것인지 나는 분위기에도 취하는 편이라 술에 취해 흥이 오르는 남편을 보며 비슷하게 즐겁다. 술을 마시는 내내 깔깔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렇게 평화로운 주말의 술자리를 함께 하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음을 느낀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계속 따라다녔던 술에 대한 고민과 남편을 만나고 난 후 우리의 끊임없던 조율 과정 등이 스쳐 지나간다. 그런 것들을 떠올리니 괜히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남편이 술을 끊거나, 내가 술을 먹어 술병이 나거나 하는 극단적인 방법만 생각하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아주 평화롭고 동시에 즐겁다. 알쓰 아내와 알콜러버 남편이 함께 불토를 보내기까지. 꽤 힘들었지만, 꽤 보람스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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