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46│2022.03.18
도통 꾸준히 하는 운동이 없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체육 부장을 맡으며(체육을 잘해서 그런 것은 전혀 아니고, 아무도 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서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체육교육과를 가볼까에 대해서도 고민(당시 입시 제도에 따라 기본적인 체력 검사를 통과할 수 만 있다면 내 성적보다 더 좋은 학교로 진학이 가능할 듯 보였기 때문에 추천받았다.)했던 만큼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내 운동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면 여러 장면들이 떠오른다.
#1. 5살쯤 됐을까. 큰 수영장에 다녔다. 나는 무척 성실했다. 수영장에 가는 것도 좋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출발 신호에서 한 번도 제대로 출발한 적이 없다. 수영장 2층 통유리창 앞에서 같은 반 엄마들끼리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곤 했는데, 다들 나를 보고 누구냐고, 왜 쟤는 저렇게 못하냐고,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조금도 나아가지 않냐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나에 대한 안쓰러움과 엄마의 부끄러움, 그리고 이사가 겹치면서 나의 수영은 끝났다.
#2. 7살 때였다. 바른 자세와 키가 크는 것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엄마는 날 발레학원에 보냈다. 꽤 오래 다녔던 것 같은데, 나는 발레 학원 졸업식날까지 끝까지 기본 동작인 턴아웃이 안됐다. 발레복을 입고 찍은 흑백 사진에서 다들 각자 뽐내고 있는데 나만 엉거주춤 있다. 왜 못했을까.
#3. 대학교 입학 후 수영에 다시 도전했다. 강의 첫날,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호흡을 잘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내가 열심히만 따라와 준다면 2개월 안에 4개의 영법을 마스터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신이 났고, 열심히 수영장에 다녔다. 그런데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발차기를 못했던 것인지, 팔 젓기를 못했던 것인지 아무튼 나아가지 못했다. 물에 떠 있는 것도 자신 있고, 물이 무섭지도 않았는데, 릴레이로 레일을 도는 시간은 정말 무서웠다. 그리고 1개월 후 선생님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른 운동을 추천했다. 나의 두 번째 수영도 그렇게 끝이 났다. (지금도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수영 선생님이 능력이 없던 것이라고 위로해준다. 덕분에 그렇게 속상하지는 않다.)
#4. 수영을 그만두고, 발레 학원으로 옮겼다. 학생 때라 돈이 늘 부족했을 때였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3개월을 치를 한꺼번에 수강했다. 당시 약 6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첫 수업을 갔다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수강료를 환불하고, 그 돈을 보태 컴퓨터를 샀다.
#5. 2015년. 취업 후 바로 클라이밍 센터에 등록했다. 당시 김자인 선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오래 매달리기는 늘 전교 상위권이었기 때문에 조금의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다. 검색 후 김자인 선수 오빠가 운영하는 '더 자스 클라이밍'에 등록했다. 당시 신사동에 있었는데, 퇴근 후 상암에서 출발해 센터에 도착하면 이미 진이 빠졌다. 게다가 나는 아싸 재질의 인간이라 센터 특유의 인싸 분위기에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웠다. 함께 코스를 봐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너무나 당연할 것임에도 괜히 주눅이 들었다. 클라이밍에 진심인 사람들 사이에서 멋있으니 한 번 해보고 싶은 내가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다.
#6. 결혼 후 남편이 팀장님 추천으로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나도 자연스럽게 같이 배우게 됐다. 내 인생에 유일하게 꾸준히 일 년 넘게 한 운동이 되었다. 나날이 성장하는 남편과 달리 나는 늘 제자리였는데 그럼에도 비교적 꾸준히 레슨 받고, 여름휴가 때는 테니스 캠프를 갈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에는 남편의 역할이 크다. 중간에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많았는데, 남편은 때로는 먹을 것으로 꼬시고, 때로는 예쁜 테니스 옷을 선물하며 멱살 잡고 여기까지 왔다. 일 년 넘게 레슨을 받고, 회사 테니스 동아리에도 가입했었는데 늘지 않는 실력과 학원의 이사, 코로나로 인한 실내 연습장 이용 불가 등으로 그만두게 됐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다시 안 하고 있다.
1,2 장면은 사실 엄마의 이야기와 몇 장의 사진들로 만들어진 기억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 수치스러움은 생생하다. 그 뒤로도 호기심에 여러 가지 운동에 도전했으나, 배웠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냥 모든 것이 배워봤다 정도다. 남편과 테니스를 함께 치면서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1년 넘게 배운 운동이 되었지만, 그걸로 끝이다. 남편과 코트를 예약해서 몇 번의 공 넘기를 하며 둘 만의 게임을 할 수 있는 정도다. 정식 경기에는 나갈 수도 없고, 도전할 의욕도 없다. 아무래도 나는 운동에 흥미와 소질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요즘 발레가 너무 배우고 싶다. 두 가지 이유다. 일단 지나치게 찐 살과 함께 지나치게 없어진 근육들을 만들고 싶다. 작년까지는 미용이 조금 더 큰 목적이었는데, 올해부터는 생존이 목적이다. 어쨌든 건강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은데, 요즘 나의 몸 상태는 방전된 배터리 같다. 뭐만 잠깐 하면 물에 젖은 솜 같아진다. 그리고 올해는 임신을 하고 싶은데, 이대로라면 임신 자체도 힘들 것 같고, 임신을 하고 나서도 무척 힘들 것 같다. 출산과 출산 후 회복에도 벌써부터 자신이 없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속 근육들을 채워나가는 운동을 하고 싶다. 두 번째는 발레복이 너무 예뻐서 입고 싶기 때문이다. 레오타드와 스커트, 타이즈, 발레 슈즈가 진짜 예쁘다. 물론 지금은 몸에 살도 많이 붙고, 자세도 좋지 않아 내 상상처럼 예쁘지는 않을 거다. 오히려 변해버린 몸에 충격받아 운동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 정도다. 그래도 발레복을 입고 싶다. 이게 가장 큰 이유다.
일주일 동안 고민하다가 회사 앞에 있는 발레 학원에 다녀왔다. 아무래도 취미반인만큼 정통 발레를 배운다기보다는 발레를 접목한 다양한 운동 클래스가 더 많았다. 이것은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들어봐야 알 것 같다. 수강이 계속 고민이 된다. 제일 큰 부분은 아무래도 돈이다. 한 달에 2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이렇게 써도 되나. 일 년이면 거의 300만 원이다. 내가 꾸준히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의문도 한가득이다. 그 와중에 예쁜 발레복은 왜 이렇게 많은지. 발레를 배울지 결정하지도 못했는데, 벌써 장바구니에는 발레복이 잔뜩 담겨있다. 분명 발레를 한다고 내 인생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이 아닌데 왜 자꾸 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발레복을 입은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발레를 배워볼까. 계속 고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