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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18. 2022

하루 새 튤립이 활짝 피었다

기록하는 2022년│Episode 45│2022.03.17

어제는 갑작스럽게 휴가였다. 해야 할 일들이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오롯이 나만을 위해 시간을 썼다. 그리고 진양 꽃 상가에서 꽃 몇 송이를 사서 집에 왔다.

미처 묻지 못해 꽃의 이름은 모르겠다. (혹시라도 알려주실 수 있으신 분이 계신다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주황색 꽃 몇 송이와 보라색 꽃 몇 송이, 그리고 아직 피지 않은 튤립 다섯 송이를 데리고 왔다. 주황색 꽃과 보라색은 구입할 때부터 이미 활짝 펴 있어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거의 그냥 가져가라는 식으로 사장님이 주셨다.) 구입했고, 튤립은 한 송이에 1천 원에 구입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화병에 꽃아 두니 참 예쁘다. 나는 꽃을 배워본 적도 없고, 꽃을 어떻게 다듬는지도 잘 모른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정리해서 꽃아 둘 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예쁘다니. 꽃의 존재가 새삼 대단스럽다. 화분이 아닌, 이렇게 꺾여있는 꽃을 살 때면 사실 늘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그렇지만 꽃 한 송이에 지나치게 행복해지는 것 역시 나다. 그래서 늘 홀린 듯 꽃을 사게 된다. 언젠가는 꽃을 배워보고 싶다는 꿈 역시 아직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아침까지만 해도 튤립은 아직 피지 않은 상태였다. 햇빛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부엌 식탁에서 거실 테이블로 화병의 위치만 옮겨두고 출근했다.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퇴근한 나를 만개한 튤립이 맞이한다. 꽃들로 거실이 환하다.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부지런히 피다니. 활짝 핀 튤립을 보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올라온다. 오늘 하루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오늘 뭐 했더라. 점심 챙겨 먹고, 저녁 챙겨 먹은 것 말고는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없다. 집에 와서 무엇인가 하려고 했는데, 그것 역시 피곤해서 내일로 미뤘다. 꽃 한 송이도 저렇게 부지런히 피어나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나만 게으름 부린 것 같다. 또 한참 튤립을 바라본다. 주황색도 아니고, 노란색도 아닌 것이 어쩜 저렇게 매혹적으로 색을 입었을까. 따뜻하고 아름답다. 이런 꽃을 보고 예쁘다는 단어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나의 표현력이 오늘따라 더욱 부족하게 느껴진다. 아쉽다. 다시 튤립을 본다. 만개한 튤립이 아름답지만 동시에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활짝 핀 튤립을 만나자마자 이별에 대한 생각이라니. 좋은 것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지 못하는, 나의 안 좋은 습관이 이렇게 또 그대로 드러나버린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올라옴에도 불구하고, 꽃은 여전히 그 자체로 그 자리에서 아름답다. 나는 꽃을 샀고, 꽃은 나를 밝히고, 집을 밝힌다. 어제까지만 해도 작은 몽우리였는데, 하루 새 튤립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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