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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21. 2022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후회가 없을까

기록하는 2022년│Episode 48│2022.03.20

주말이 끝나간다. 이번 주말에는 뭘 했는지 모르겠다. 후다닥 끝나버리는 짧은 주말에 늘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주는 아쉬움보다는 후회가 남는다. 모처럼 따로 챙겨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던, 오롯이 내 계획대로만 채우면 될 주말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시작은 금요일이었다. 퇴근 후 8시부터 잠들어버린 남편 덕분에 나도 일찍 침대에 누웠다. 일찍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보람찬 주말을 보내야지. 새벽에 등산도 가고, 가보고 싶던 카페도 가봐야지. 그런데 역시 누워서 하는 핸드폰이 문제다. 잠들기 전 본 인스타그램에서 로코 클리셰 덩어리로 화제라는 드라마 <사내맞선>의 짤을 보게 됐다. 역시 클리셰가 클리셰인 이유가 있는 것인가. 짧은 짤이었지만 드라마를 보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 어영부영 있다가 웨이브 가입하고 드라마 여섯 편을 다 보고 나니 새벽 4시였다. 해가 길어졌는지 괜히 벌써 밝은 기분이다. 황급히 잠에 든다.


중간에 남편이 몇 번 깨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토요일 오후 2시 30분이다. 앗. 망했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잤는데 아직도 피곤하다는 거다. 벌떡 일어나고 싶지 않아 얼마간 침대에서 더 뒹굴거리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제 일찍 잔 남편은 아침 7시에 일어났다고 한다. 동네 산책도 다녀오고, 게임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컨디션이 아주 좋다. 남편은 계란 볶음밥을 해 먹고, 나는 점심은 패스하기로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어제의 일기를 쓰고, 남편은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한 잔 하니 겨우 잠이 깬다. 일기를 쓰고 어영부영 뒹굴거리다가 저녁을 먹으러 간다. 스타필드에 있는 회전초밥집에 가기로 했다. 도착하니 사람이 많다. 3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평소 같았으면 기다리지 않았을 텐데, 특별히 할 일이 없던 우리는 기다린다. 줄 서서 기다렸다가 초밥을 먹고, 가구를 보고, 그릇을 몇 개 샀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먹고 싶다고 한 먹태를 샀다. 그리고 남편과 나름의 불토를 소소하게 보냈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고 남편과 한참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새벽 2시다. 문제는 내가 너무 늦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새벽 2시가 넘었는데 졸리지 않다. 이미 잠들었어야 내일을 잘 보낼 수 있을 텐데. 꾸역꾸역 침대에 눕는다. 역시나 잠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핸드폰을 드는 실수를 하지 않으리.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 것이 새벽 3시였다. 그 뒤로도 한참 뒤척였다. 몇 시에 잠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알람이 울린다. 일요일 9시 30분이다. 너무 졸리다. 하지만 무조건 일어나야 한다. 오늘 늦게 일어나면 이따 밤에 잠들지 못할 테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월요일 아침 출근부터 너무 힘들 거고, 일주일 내내 피곤할 거다. 겨우 일어난다. 일어나서 어제의 흔적을 치운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를 쓴다. 일기를 쓰고 있는데 남편이 일어난다. 마제소바가 먹고 싶다고 한다. 먹으러 가기로 한다.


우리는 종종 (거의 대부분. 주 1회 정도는) 경복궁 <칸다소바>로 마제소바를 먹으러 온다. 우리 부부의 소울푸드라고 할 수 있다. 일이 없는 주말이라면 대부분 먹으러 온다. 밥을 먹기 위해 줄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웨이팅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코로나가 괜찮아지면, 해외여행을 가도 이상하지 않을 날이 오면 우리는 일본으로 '1일 3 마제소바 투어'를 가기로 했다.

경복궁 <칸다소바>에 오면 늘 마제소바 1개와 아부라소바 1개를 시켜 나눠먹는다.

우리가 처음 여기에 오기 시작했을 때에 비해 이 주변에 줄 서서 먹는 식당이 많아졌다. <히타토제면소>, <티엔미미>, <주간소바식당 산>, <사토루 더 서촌>까지. 늘 한 번쯤 가보자고 하는데, 우리는 언제나 자꾸만 <칸다소바>에 오게 된다. 익숙한 것이 좋기 때문인지, 그 정도로 맛있기 때문인지 (이상하게 한 번도 같은 맛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매주 조금씩 다른 맛이다.)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의 소울푸드이자 주말 루틴이 됐다.


점심을 먹고 주차를 한 김에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실까 하다가 너무 추워서 그냥 집으로 가기로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씨 확인도 제대로 안 하고 티셔츠 한 장씩만 입고 온 탓이다. 이럴 땐 이불속이 최고지. 원두가 다 떨어졌다는 것이 생각나서 급하게 동네 카페에서 원두를 샀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은 커피를 내리고 나는 마켓컬리에서 산 케이크를 꺼낸다. 피곤이 풀리는 맛이다.

<샐리맨더 커피 로스터스>에서 산 만델링 원두와 마켓컬리에서 산 몽슈슈의 몬테카를로. 달달하니 꽤 잘 어울린다.

커피를 한 잔 하나 몸의 찬기가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몸이 따뜻해지니 갑자기 노곤해진다. 잠깐 30분만 누워볼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이 든다. 지금 누우면 잠깐은 절대 불가능하다. 아. 잠들면 안 되는데. 내 주말을 이렇게 보낼 수 없는데.


일어났다. 역시나 잠깐은 아니다. 3시 조금 넘어 잠들었는데 7시다. 4시간을 잔 거다. 망했다. 이건 진짜 망했다. 오늘 저녁잠은 다 잔 기분이다. 일어나자마자 나갈 준비를 한다. 7시 30분에 반상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이사한 후 처음 하는 반상회다. 이사한다고, 공사한다고 떡도 돌리고 호두과자도 돌렸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얼굴을 보고 인사하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떨린다. 반상회가 끝났다. 8시 30분이다. 반상회 자체는 재미없었다. 그래도 비효율적으로 팀플하는 기분을 너무 오랜만에 느껴서인지 꽤 흥미로웠다. 집에 돌아와서 순대 볶음으로 저녁을 먹고, 그래도 헛헛해서 방울토마토 카프레제를 해서 먹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치우고 앉았더니 벌써 11시다. 지금 자야 내일 잘 일어날 수 있는데. 늦잠을 잔 남편과 낮잠을 잔 나는 모두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자보려고 노력한다. 안 될 것 같다. 누워서 뒤척이다가 새벽 2시가 훌쩍 넘어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나는 수면 시간의 총 양에 상관없이 너무 늦게 자고 너무 늦게 일어나면 제대로 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분명 주말 내내 잔 시간을 보면 평소 수면 시간의 두배는 족히 넘을 텐데도 이상하게 주말 내내 계속 피곤했다.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실컷 논 것 같지도 않다. 매일 회사 다니느라 시간이 없어서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해라고 핑계 대는 것에 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느낌이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기분으로 주말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렇게 귀한 주말을 보낸 것에 대한 후회를 하느라 남은 주말도 얼렁뚱땅 지나간다. 남편은 후회하는 나를 보며 우리가 이런 주말을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한다. 나도 안다. 우리의 평온한 주말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다만 나는 2박 3일의 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대신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기만 한 나 스스로에게 불만이다. 어느 하나 제대로 못한 주말이, 그냥 내 요즘의 모습 같아서. 그래서 조금 후회한다.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후회가 없을까. 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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