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49│2022.03.21
오늘은 남편의 사내 축구 동아리 모임이 있는 날이다. 시간은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다. 퇴근 후 회사 근처에서 마라샹궈를 먹었다. 오랜만의 얼얼한 맛에 취해 너무 많이 먹었는지 배가 과하게 부르다.
"집에 가서 동네 산책하고 싶은데, 오늘은 자기 축구 가니까 못하겠네. 아쉽다."
"심심하면 이따 걸어서 마중 올래? 운동도 되고, 산책도 되고."
저녁을 먹고 집에 가서 간단히 정리를 하고 고민을 한다. 이대로 침대에 누울 것인가. 아니면 남편을 마중 갈 것인가. 소화도 시킬 겸 마중 가기로 한다. 집에서 남편이 축구를 하는 월드컵경기장 풋살구장까지는 도보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불광천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파워워킹을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신나게 걷는다.
한 이십 분쯤 걸었을까. 걷고 있는 길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진다. 수도 없이 걸었던 평범한 이 길이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상하게 울컥했다. 울컥. 밀려온 감정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한 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봄이 온 것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느껴진 따스함 때문일까. 분명 슬픈 것은 아니었다. 우울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주 기쁨의 눈물도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 길을 걷는데 문득 이 세상이 나를 살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부쩍 이상해졌다.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죽음 이후에 나의 소멸에 대해 툭 생각하다가 눈물이 왈칵 난적이 여러 번이다. 남편은 뒤늦은 사춘기가 온 것 같다며 마음껏 고민하고, 마음껏 느끼라고 했다.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별다른 사춘기랄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그렇다. 특별히 고민했던 적도 없고, 특별히 우울했던 적도 없다. 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리면 낙엽 굴러가는 소리에도 깔깔댔던, 그런 기억뿐이다. 웃음으로 가득했던 학창 시절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새 부쩍 그런 생각들에 대해, 그런 감정들에 대해 예민해지는 것 같다.
서른셋. 문득 내 나이를 떠올리면 막막해질 때가 있다. 내가 생각했던 서른셋은 이렇지 않았다. 이보다는 조금 더 성숙하고, 조금 더 명확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게다가 서른셋은 약간 애매하게 느껴진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어버린 것 같다. 동시에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나의 삶을 살아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함도 느껴진다. 나이에 이렇게 집착하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 내 나이를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이 됐다.
조금 진정이 된다. 다시 걷는다. 아까보다 조금 더 신나는 노래를 틀고, 아까보다 살짝 더 차가워진 밤공기를 느낀다. 짧은 순간 새로운 마음이 된다. 조금 시원하기도 하고, 조금 가볍기도 하다. 걷는 속도를 올린다.
풋살장에 도착했다. 다들 열심히다. 남편을 만났다. 혼자 걸어갔던 갔던 길을 남편과 함께 돌아온다. 돌아올 때의 길은 다르다. 올 때 걸었던 길과는 사뭇 또 다른 느낌이다. 아까의 감정이 아주 오래전 과거처럼 희미하다. 이래 저래 감성이 충만한 요즘이다. 뒤늦게 출렁이는 감정에 어쩔 줄 모르겠다. 일단은 잘 느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