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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27. 2022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록하는 2022년│Episode 54│2022.03.26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6살 때쯤 분당으로 이사 갔고, 초등학교 때 아빠의 도시 탈출 목표로 인해 (당시 비교적 시골이자 할머니 댁과 가까웠던) 천안으로 이사했다. 천안에서도 한 동네에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쌍용동과 불당동, 신부동과 두정동을 오갔다. 산속에 살고 싶었던 아빠 덕분에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니는 광덕산 근처 시골에도 살았었다. 별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내 학교가 바뀔 때마다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고, 그 사이사이 아빠는 새로운 곳에 살아보길 희망했을 뿐이다. 그런 내게 이사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오래된 동네 친구가 없는 것도 당연했다. 어쨌든 살고 있는 동네에 때마다의 친구는 늘 있었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다. 서울로 대학교를 오면서 1년 정도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고, 2년 정도는 천안에서 KTX를 타고 통학했다. 그러던 대학교 3학년 말, 부모님과 함께 아예 다시 서울로 이사 왔다. 도곡동에서 그렇게 약 7년을 살다가 결혼과 동시에 은평구 신사동으로 이사했다. 내 결혼과 비슷한 시기에 부모님은 용인으로 이사했다. 이렇게 적고 보니 꽤 많이 옮긴 것도 같은데 이것이 이상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지연과 학연, 그리고 혈연을 중시하는 대한민국에서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어떤 모임에 가건 대부분 첫 만남에서는 서로의 고향을 묻고, 그를 바탕으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친밀감을 느낀다. 나의 경우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고향’이란 단어에 포함되어있는 ‘추억’이나 ‘유년시절’과 가장 장 어울리는 천안을 늘 내 고향이라고 답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천안 삼거리’ 또는 ‘호두과자’ 등으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지만 가끔 부연설명이 필요한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천안에서 태어난 거야?” 라거나 “부모님은 그럼 지금 천안에 계셔?”와 같은.


아무것도 아닌 질문인데 때때로 꽤 귀찮고 구구절절 대답하고 설명해야만 했다. 그리고 복잡해졌다. 천안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라고 대답하면, 그럼 네 고향은 천안이 아니라 서울이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성인이 된 후 부모님과 같이 천안에서 서울로 이사 와서 함께 살고 있다는 대답에는 어김없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부모님에 능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고향이 서울이라고 대답해버린다거나, 아니면 천안에서 태어났다고 얼버무리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이상하게 나한테 고향을 묻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대답에서 늘 잘못된 점을 찾았다. 차라리 '살면서 제일 좋았던 곳은 어디냐.'라거나, '살고 싶은 곳이 어디냐.'라고 물어봤다면 열과 성을 다해 대답했을 텐데. 


고향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 나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고향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고향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크게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필요에 따라서 순간을 잘 넘어가기 위해 골라서 답하는 대답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왜인지 내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생겼던 것 같다. 남편은 고향이 명확하다. 남편은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집에서 중학교 때까지 살다가, 고등학교 때 바로 옆 집으로 이사한 이후로 계속 그 집에 살고 있다. 남편이야 대학교 때 서울로 올라오긴 했지만, 어쨌든 부모님은 현재도 계속 그 집에 살고 계신다. 남편은 명절이나 휴가 때 늘 그 집으로 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고등학교 때부터 살았던 그 집으로 나는 간다. 남편을 따라 처음 장흥에 내려갔을 때 남편이 나온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그대로 있고, 그 주변에 남편이 다니던 학원, 피시방, 식당이 그대로 있다는 것에 꽤 놀랐다. 학교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친구들과 처음 맥주를 마셨던 강변이 현재까지 그냥 그대로 있다. 남편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등장하던 대부분의 모든 것이 지금도 기억 속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남편의 고향을 본 후 나도 모르게 내 고향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가끔 천안이 그립고, 내 고향이 그리워졌다.


그러던 중 오늘 천안에 가게 됐다. 아빠가 천안에서 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아빠 응원 겸 오랜만에 천안 구경을 하고 싶어서 남편과 함께 내려갔다. 학교를 다닐 때는 매일 오가던 천안인데도 아예 서울로 이사하고 나니 은근히 멀게 느껴져 그동안 자주 오지 못했다. 친한 친구들 대부분이 서울로 왔기 때문에 친구들을 보기 위해 천안에 내려갈 일도 없었다. 결혼식 참석 등의 이유로 종종 왔지만 급하게 볼 일만 보고 바로 올라왔다. 천안에 제대로 간 것 만 치면 오늘이 거의 십 년 만이었다. 조금 설렜다. 남편의 고향에 가서 남편의 추억을 함께 나눴던 것처럼 나도 남편에게 내 추억을 들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바뀌었다. 하마터면 살 던 집도 못 찾을 뻔했다. 정말 좋아했던 빵집도 그 사이 너무 커지고 유명해졌다. 주차장이 운동 장만해지고, 줄 서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근처 진짜 자주 갔던 파스타집은 다른 곳으로 이사했고, 메뉴도 바뀌었다. 그 사이에 아파트가 정말 많이 들어서서 방향 찾기도 힘들었다. 추억 공유는커녕 많이 변한 모습에 목적지를 계속 지나치고  "진짜 많이 바뀌었다. 못 알아보겠어.”를 남발할 뿐이었다. 결국 계획했던 구경 대신 낯선 기분만 가득 안고 바로 다시 올라왔다.


모르겠다.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그대로인데 변한 모습에 놀라기만 한 것일까. 오랜만에 만난 동네에 내가 시간을 너무 적게 준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동네가 변하는 시간 동안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변해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 변하는 것은 당연한데 나는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알 수 없다. 다만 너무 달라진 모습에 나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매일 얼버무리던 나였는데, 이제는 진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더 헷갈리게 됐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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