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57│2022.03.29
후배가 퇴사한다.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고 한다. 같은 팀이라거나 같은 국은 아니었다. 업무가 많이 겹쳤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보다 낮은 연차의 사람들이 손에 꼽을 정도인 (물론 지금은 과거보다 조금 많아졌다.)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내게 후배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사실 내게는 후배라기보다 그냥 어떤 시기를 함께 버틴 동지에 가깝다.
어쨌든 그런 후배가 퇴사한다. 계속 고민해왔던 것을 봤기 때문에 후배의 결정이 놀랍지는 않다.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으로서 용기 있게 결정한 후배가 멋지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한다.
다만 마음이 아프다.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참 힘들었을 테다. 퇴사를 밝히고 나서 감당해야 했을 여러 가지 일들도 어느 하나 쉽지 않았을 거다. 거기에 더해 후회가 밀려온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금방 헤어질 줄 알았다면 좀 더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걸 싶다. 10년, 20년 차가 가득하고, 정년퇴직자들의 비중이 무척 높은 회사라 나도 모르게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한 끼라도 더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것뿐이다. 상암동에 새로 생긴 식당을 예약했다. 지금 회사 근처에서 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것을 같이 먹고 싶었다.
퇴근하자마자 예약해둔 식당으로 달려갔다. 이별의 무게는 무겁고, 나눠야 할 이야기도 많지만 지금만큼은 서로 이 순간에 충실하기로 한다. 무엇을 먹을지 설레 하고, 나온 음식 사진을 찍으며 깔깔댄다.
우리는 '직접 만든 빵', '깔라마리 튀김', '관자', '초리조 새우', '단호박 뇨끼'를 먹었다.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참 정성스러웠다. 마음 같아선 모든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후배와 조만간 다시 한번 오자고 약속하고 식당을 나섰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실컷 수다를 떨다 보니 후배의 퇴사가 마치 없던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아니다. 후배는 곧 회사를 떠날 테고, 난 계속 이곳에 있을 거다. 후배의 고민을 들으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무능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정말로 무능력한 거다. 사실 후배와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던 나였기에 그 부분이 유독 크게 다가왔다. 같은 문제, 다른 결론. 사실 나보다 나은 선택을 한 후배에게 내가 도움 줄 것이 없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오히려 내가 이렇게 또 배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냥 맛있는 밥을 함께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종종 맛있는 것을 함께 먹을 것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이다. 후배의 미래와 나의 미래를. 각자의 인생을 각자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때로는 좋은 소식을 전하고, 때로는 힘듦을 나눌 거다. 후배가 퇴사한다.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