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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29. 2022

신나는 저녁, 짝! 즐거운 저녁, 짝!

기록하는 2022년│Episode 56│2022.03.28

김번복이 된 이후로 나에게는 먹어야 할 저녁이 여러 개 있다. 몇 개는 먹었고 몇 개는 예정되어있다. 

그중 하나가 오늘이다. 이번 모임 역시 멤버의 코로나 확진과 멤버의 가족 코로나 확진 등으로 인해 몇 번이고 밀리고 밀리다가 오늘까지 왔다. 메뉴는 삼겹살, 장소는 한남동에 있는 <현대식당>이다.


이곳은 작년 12월에 처음 와봤다. 여기에 이런 곳이 있다니. 꽤나 충격이었다. 그때도 오늘의 멤버 그대로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구 팀장님(현재는 옆 팀의 팀장님이 되셨다.)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선배님(아마도 내 퇴사 번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중 한 명일 테다.) 그리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남편(우리는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 같은 부서였던 적은 없지만 구 팀장님께 퇴근 후 따로 공부를 배웠었고, 그때부터 종종 팀장님과 저녁을 함께 했다.), 그리고 나까지. 모두 4명이다. 즐겁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곳은 맛집에 조예가 깊은 구 팀장님의 단골집이다. 여기에 직접 오기 전에는 '베리 데인저러스 한 곳'이라는 팀장님의 설명이 무슨 말씀인가 했는데, 자리에 앉아 첫 잔을 들이켜자마자 그 말 뜻을 바로 이해했다. 술도 못 먹는 나지만, '술이 달다'는 말을 피부로 느끼게 한 곳이랄까. 여기에서 술을 먹다 보면 술을 먹고 먹다가 술에 잡아먹힐 수 있을 것 같다.


여섯 시 땡 치자마자 팀장님 차에 올라탄다. 강변북로는 막히지 않았고,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작년 12월 방문 때 찍은 사진이다. 이번에는 못 찍었다. 그때는 오늘보다 어둠이 더 빨리 내려앉았다.

자리에 안자마자 밑반찬이 먼저 나온다. 묵은지와 파김치를 제외한 나머지 반찬은 그때 그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이곳의 김치는 정말 맛있다. 특히 적당히 익은 파김치는 군내도 없이 깊은 맛이 난다. 미끌거리지도 않고 아삭한 것이 진짜 맛있다. 파김치 하나만으로도 밥 한 공기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은 원래 순댓국이라던가 백반 등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늘 삼겹살을 먹는다. (늘이라고 하기에는 오늘이 두 번째 방문이긴 하지만. 뭐 어쨌든.) 

삼겹살이 정말 맛있다. 이곳 삼겹살이 왜 이렇게 맛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고기가 엄청 특별하게 비싸거나 좋은 것도 아닌 것 같고(가격대가 굉장히 저렴하다), 불이라거나 조리 도구가 특별한 것도 아닌 것 같다. 독특한 양념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같이 먹는 김치가 무척 맛있긴 하지만, 김치를 제외하고도 이곳 삼겹살은 있는 그대로 맛있다. 노포에서 오는 특유의 분위기가 가미된 맛이라고 하더라도, 그 분위기 이상으로 맛있다. 이곳 삼겹살이 이렇게까지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삼겹살 한 판을 더 시켜 이곳에서 오늘의 저녁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아쉽게도 삼겹살과 밥이 다 떨어졌다고 하셔서 급하게 1차를 마무리한다.


2차로 근처 횟집에 가서 제철 맞은 도다리를 먹었다. 

솔직히 말하면 약간 취해서 회 맛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탱글탱글하고 쫀득쫀득했던 것 같다. 번데기를 따끈따끈하게 데워주셨는데 그게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반찬 하나 대충 내지 않는 곳이라 다음에는 맨 정신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실컷 먹고, 실컷 웃다 보니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다. 팀장님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오늘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피자를 주문하시는 거다. 횟집에서 나와 한남역 1번 출구 앞 <피자스쿨>에 간다. 지난번 저녁의 끝에도 피자를 사주셨다. 당시 너무 배불러 피자를 먹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몇 번이고 사양했는데, 팀장님은 본인만 믿어보라며 끝까지 피자를 싸주셨다. 추운 겨울이라 집에 도착했더니 피자가 차갑게 식어있었는데 그 상태로도 너무 맛있었다. 다음날 남은 피자를 데워먹었는데, 더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피자스쿨 피자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아니 그냥 그 자체로 정말 맛있는 피자였다. 


지난번 너무 맛있었던 기억에 이번에는 사양하지 않았다. 페퍼로니 피자에 치즈크러스트 추가가 팀장님의 추천 메뉴다. 두 판이나 사주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든든하다. 


집에 돌아와 피자를 먹는다. 역시나 맛있다. 날이 따뜻해서 인지 오늘은 피자에 온기가 남아있다. 한 조각만 먹고 자려고 했는데, 한 조각이 두 조각이 되고, 두 조각이 세 조각이 되었다.


오늘 저녁 처음부터 끝까지 퇴사 번복이라거나 불안한 내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다른 자리라면 그것이 오히려 불편해 내가 먼저 이러쿵저러쿵 내 상황과 사유에 대해 이야기했을 거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것들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감히 우리는 그런 사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신 엄청 큰 소리로 웃고, 또 웃었을 뿐이다. 퇴사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팀장님께서 하신 첫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야. 잘했다." 그 말이 여태까지 계속 맴돌고 맴돈다. 당장의 퇴사는 없어졌겠지만 앞으로의 내 회사 생활에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줄 그런 어떤 말이다. 참 좋은 저녁이었다. 신나는 저녁, 짝! 즐거운 저녁,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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