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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31. 2022

일찍 잠들었다.

기록하는 2022년│Episode 58│2022.03.30

지난 주말부터 충분한 잠을 자지 못한 기분이다. (물론 객관적인 수명의 양은 충분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주말 끝나가는 일요일이 아까워 새벽 3시쯤 잠들었더니 지금까지 피곤하다. 월요일에는 내 퇴사 번복 놀림 회식으로 인해 잠을 보충하지 못했고, 화요일에는 후배 퇴사 축하파티로 인해 잠을 보충하지 못했다. 인간은 충분한 회복력이 있을 테고, 어제 못 잔 잠을 오늘 잔다고 채워지는 것도 아닐 테지만, 나에게는 잠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내가 하루 평균 7시간 30분은 잔다고 치자. 일이 있어 5시간 밖에 못 잤다면 그다음 날은 평소보다 2시간 30분은 일찍 자는 거다. 혹시 주중에 계속 일이 있어 5일의 총량인 37시간 30분을 채우지 못했다면 부족한 잠은 고스란히 주말의 몫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잠을 자는 것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할 때 잠을 이겨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무척 한심하게 느껴졌다. 정신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대학교에 와서 놀 때조차 잠을 계속 미루고 미루다가 어느 순간 퓨즈가 나간 것처럼 꺼지는 나를 보며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이 순간에 잠이 오다니. 회사를 다니고 나서는 귀하디 귀한 주말에 잠을 이겨내지 못하는 내가 나약하게 느껴졌다. 잠을 안 자보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해봤지만 그때뿐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언젠가 한 번은 밀린 잠을 보충해야만 했다. 정신력이 부족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잠을 이기기는 어렵겠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는 최대한 잠을 덜 보충하고도 괜찮을 수 있는 방법이라거나, 아니면 잠의 총량을 조금씩 줄여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잘 안된다.


그래서 사실 오늘만을 기다렸다. 약속도 없고, 정해진 할 일도 없는 수요일. 오늘이야말로 주말부터 부족했던 잠을 채우기에 적합하다. 퇴근 후 집에 와서 간단히 저녁을 먹는다. 이어서 집 정리를 하고 씻는다. 그리고 침대에 눕는다. 침대에 눕기까지 한순간도 비는 틈이 없어야 한다. 자칫 5분만 쉴까 하고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 마무리를 못하고 그대로 잠들거나, 잠들었다 깨서 일어나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밤을 날려버릴 수도 있다.


막상 침대에 눕고 나니 정신이 말짱해진다. 순간 고민이 된다. 하루하루 소중한 날인데 이렇게 일찍 잠들어도 될까. 내가 너무 게을러서 이렇게 합리화를 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싶은 공부가 있었는데 귀찮다고 하루 이틀 미뤘던 것이 생각난다. 딱 한 시간만 하고 잘까. 읽기로 했던 책과 쳐내야 할 간단한 일들이 떠오른다. 아냐. 일어나기 귀찮아. 오늘은 잘 거야. 하고 애써 신경을 끈다. 이번에는 밀린 드라마들이 생각난다. 드라마는 뭐 할 것도 없다. 그냥 핸드폰에서 지금 바로 보면 된다.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재생한다. 한 5분쯤 봤을까. 아차, 싶다. 이렇게 누워서 드라마를 볼 거라면 차라리 밀린 공부나 운동을 해야지. 드라마 보다가 늦게 잠들면 내일 너무 자괴감이 들 것 같다. 그래. 자야지. 내일을 위해 난 기쁘게 잘 테다.




아침이다.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눈이 떠졌다. 아침저녁으로 길어진 해 덕분에 창 안으로 햇빛이 쏟아진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일까. 몸이 개운하다. 시계를 보니 출근까지 한참 남았다. 좋다. 옆으로 보니 나보다 더 일찍 잠든 남편이 나보다 더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개운한 몸으로 일어나 평소보다 오래 씻는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엉거린다. 남편 역시 아침의 컨디션이 아주 좋다. 둠칫 둠칫. 평소보다 큰 동작으로 출근 준비를 한다.


"오늘 컨디션이 괜찮아 보이시는 걸요?" 

"자기가 더 좋아 보이는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아ㅏㅏㅏㅏㅏㅏ주 좋아요"


아주 즐거운 아침이다. 이 맛에 일찍 잠드는 거다.


핸드폰을 본다. 아. 어제 내가 잠든 사이에 동아리 친구들끼리 급 줌 번개가 있었다.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밤새 카톡으로 이어진 번개 후기를 보니 꽤 재미있었나 보다. 역시. 모든 재미있는 일은 내가 잠든 사이에 일어난다. 어제 너무 일찍 잠든 것이 조금 아깝나 싶다. 그렇지만 날아갈 듯 가벼운 나를 보니 아무래도 잘 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하루를 48시간처럼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하루에 3-4시간만 자도 충분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면 잠도 줄어든다는데 나는 도대체 언제쯤 줄어들까 싶다. 물론 내가 이렇게 잠이 많은 것은 아직도 정신력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최소한의 잠은 잘 자기로 결정했다. 넘치는 잠 때문에 사회적 성공은 못하더라도 즐겁게 살고 싶다. 그래서 그냥 일찍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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