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62│2022.04.04
대학교 동아리 선배가 5월 달에 결혼한다. 겸사겸사 만나기로 한다. 요즘 같은 시기에 사실 청첩장 모임이 필요한지, 옛날만큼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핑계 삼아 만나기로 했다. 이미 코로나 핑계로 일 년 넘게 못 봤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마 결혼식날 다 같이 정신없이 만났다가 차 한 잔 하고 헤어질 테다.
광화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들 너무 떨어져서 살아서 장소를 정하는 것도 한참 걸렸다. 약속 시간은 7시 30분. 언제나 그렇듯 7시 35분이 되어야 모두 도착했다. 역시나 변하지 않는 서로를 추궁하며 안부를 묻는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것처럼 똑같다. 오래된 친구들의 소중함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학교 쪽문 근처에서 파전 하나를 시켜놓고 아껴먹던 과거에 비해 너무 성공한 것 아니냐고 너스레를 떤다. 가끔 보면 참 신기하다. 서로가 서로를 보기엔 아직도 너무 애 같은데 어쨌든 모두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고 사회 구성원으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니. 매번 놀란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가 서로를 놀린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매번 만날 때마다 지겹도록 과거 이야기를 했다. 좋게 말하면 아름다운 추억 여행이고, 사실은 과거에 머물고 있는 거다. 서로의 흑역사를 만날 때마다 물어뜯고, 웃겼던 이야기를 매번 똑같이 한다. 분명 수십 번 나눴던 이야기인데 매번 재미있다. 그래서 매번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매번 과거를 회상한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오늘의 모임에는 공교롭게 동아리 사람들 중 결혼한 사람들만 모였다. 거기에 결혼할 예정인 오늘의 주인공 선배까지. 우리와 어울리지 않게 촛불을 켰다.
자연스럽게 결혼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청첩장 선택부터 신혼가구 고르기까지. 모두 각자의 경험을 나눈다. 결혼 준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결혼 생활 이야기로 넘어간다. 결혼 초기에 느꼈던 감정들과 어려운 점, 좋은 점, 상대 배우자 부모님과의 거리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저렇게 표현해서 혹시나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나 싶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배우자와 다퉜던 - 방문을 닫고 자야 하나 열고 자야 하나, 보일러 온도를 누구에게 맞춰야 하나,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야하나 중간부터 짜야하나. 등의 이유로 - 시시콜콜한 이야기였을 뿐이다. 한참 깔깔거리다가 문득, 우리가 지금처럼 현재를 이야기한 적이 있나 싶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없다. 새삼 바뀐 대화 주제가 우리 모두에게 신기하고 낯설다.
사실 아침까지만 해도 월요일 저녁에 모임이 가능하다고 투표했던 나 스스로를 원망했다. 하지만 막상 나와보니 역시나 재미있다. 오래된 친구들은 한결같아서 재미있다. 한결같음 속에서도 각자 가정을 꾸리고, 조금씩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재미있다. 어쨌든 오늘은 과거로의 추억 여행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대화 주제가 바뀐 것이다. 그동안 늘 과거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지금을 이야기한다. 그 변화가 낯설지만 좋다.